책을 되새김질하다

초롱불

대빈창 2026. 4. 15. 07:00

 

책이름 : 초롱불

지은이 : 박남수

펴낸곳 : 열린책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밑에 / 행길도 집도 아주 감추였다. // 풀 짚는 소리 따라 초롱불은 어디를 가는가. // 산턱 원두막일 상한 곳을 지나 / 무너진 옛 성터일 즈음한 곳을 돌아 // 흔들리던 초롱불은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 //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

 

‘어둠을 밝히는 조그만 초롱불의 이미지를 통하여 식민지 현실의 암울함을 상징’한 표제시 「초롱불」(14쪽)의 전문이다. 시인 박남수(朴南秀, 1918-1994)는 평양에서 태어났다. 등단 이전에 「삶의 오료悟了」(조선중앙일보, 1932), 「행복」·「산림」(맥, 1938) 등 수십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을 통해 등단했다. 3회에 걸친 추천작은 「심야」, 「마을」, 「주막」, 「초롱불」, 「밤길」, 「거리」 등이었다. 초기 시들을 정리하여 1940년 첫 시집 『초롱불』을 간행했다.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하여 쓴 시들은 전쟁의 비참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고발했다. 자연의 생명력과 영원한 아름다움을 긍정했다. 1954년 『문학예술』의 주간, 1957년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 1959년 『사상계』 상임편집위원 등 활발하게 문단활동을 했다. 두 번째 시집 『갈매기 소묘』(1958), 세 번째 시집 『신의 쓰레기』(1964), 네 번째 시집 『새의 암장』(1970)을 간행했다.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사슴의 관』(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그 이후』(1993), 『소로』(1994)를 펴냈다. 일흔다섯되던 1994년 9월 미국 뉴저지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시인 박남수는 〈새〉의 이미지를 매개로 해서 가혹한 세계와 순수한 존재 사이의 비극적 갈등을 계속해서 탐구했다.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시의 미학적 차원을 존중하며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인식론적 탐색을 지속시켜 나갔던 시인’(37쪽)이었다. 『초롱불』은 시인의 경험세계와 미학적인 경향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말했다.

시집은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으로 1940년 2월《삼문사》에 발행된 초간본이 텍스트로 3부에 나뉘어 16편이 수록되었다. 마지막은 가슴에 물기어린 슬픔을 차오르게 한 「거리」(14쪽)의 전문이다.

 

남폿불에 부우염한 대합실에는 / 젊은 여인과 늙은이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흔들렸다. // ―네가 가문 내가 어드케 눈을 감으란 말이가. // 경편輕便 열차의 기적이 마을을 흔들 때, / 여인은 차창에 눈물을 글썽글썽하였다. // ―네가 가문 누굴 믿구 난 살란? // 차가 굴러 나가도 / 늙은이는 사설을 지껄였다. // ―데놈의 기차가 내 며누리를 끌구 갔쉬다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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