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수용소군도 6

대빈창 2026. 4. 21. 07:00

 

책이름 : 수용소군도 6

지은이 : 알렉산드르 솔제니찐

옮긴이 : 김학수

펴낸곳 : 열린책들

 

6권은 제6부 ‘유형’과 제7부 ‘스딸린 사후’, 「후기」, 「1년 뒤에 덧붙인 후기」와 역자해설 「세계적인 기록문학―휴먼 다큐멘터리의 최고봉 『수용소군도』」, 알렉산드르 솔제니찐 연보로 구성되었다. 제6부 ‘유형’은 제1장 자유 시대 초기의 유형 ~ 제7장 사회에 나온 죄수들. 소련은 형기를 마친 죄수를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고, 유형지에서 살게 하고 감시했다.

제정시대 직업적 혁명가 레닌은 뚜르한스끼 지방에 유배되었을 때, 한 달에 12루블을 받았다. 유형지의 물가는 러시아 본토의 2분의 1에서 3분의 1에 불과했다. 레닌은 생활비를 벌 걱정도 없이 만 3년간 전력으로 혁명이론에 집착했다. 5루블만으로 완전한 식사를 제공하는 주택을 빌리고, 나머지 돈으로 책을 사고, 탈주를 위해 저축했다. 소비에뜨시대 유형은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멈추는 창고였다.

1930. 1. 5. 전 소비에뜨 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결의한 ‘꿀라끄 박멸 운동’은 1천5백만명의 농민을 오지로 강제이주시켰다. 아주 근면하고 농업경영을 잘하는 현명한 농민, 러시아 민족을 떠받치고 있던 농민들이 근절되었다. 소비에뜨 연방과 수용소군도 사이에 있은 유형 왕국인 거대한 예토穢土는 크고 작은 도시를 위시하여 촌락이나 잡초가 무성한 오지까지 포함되었다.

유형지의 일반작업은 수용소와 똑같아서, 생명을 빼앗고, 견딜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무리한 작업이었다. 진짜 밑바닥 생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집단농장에 간 특별이주자들이었다. 유형지에서는 자기 생각을 남한테 말할 수 없었고, 사회로부터 받아들인 것은 무엇이든 감춘다는 것이 기본적인 습관이었다. 흐루쇼프 시대가 오기까지 40년간, 석방이란 2개의 체포 사이의 상태. 첫 번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사이가 〈형기〉이며, 한 수용소 구내를 나가서 다른 수용소 구내에 들어가기까지의 사이가 〈석방〉이었다.

제7부 ‘스딸린 사후’는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가 출간되고 난 후의 파장과, 스딸린이 죽고 흐루쇼프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수용소군도가 살아남은 시대를 그렸다.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가 출간되자, 마치 격류처럼 사람들로부터 편지가 쇄도했다. 분함과 증오를 감춘 수없이 칭찬하는 신문기사들이 격류를 이루었다. 만년의 스딸린이 고안한 〈특수 수용소〉는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고 오직 적들만 삼키고 죄수들이 만든 물건과 시체만을 배출하는 제도였다.

소련에서는 아무리 중요한 사회적 사건이 터져도 두 가지 길―묵살되거나, 아니면 왜곡되거나 밖에 없었다. 흐루쇼프 시대의 수용소는 1백만명에 이르는 〈제58조〉는 사라졌으나 이전과 같은 몇 백만명의 사람들이 투옥되었다. 법을 어긴 희생자들로, 제도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 갇혔다. 수용소군도를 없애는 순간, 이 국가체제 역시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1962년 6월 2일 노보체르까스의 노동자 항쟁은 러시아 노동운동사에서 각별했다. 오래전에 계급이 없어진 사회며, 하늘의 절반이 공산주의의 붉은 빛 속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범죄가 없어지지 않고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솔제니찐은 『수용소군도』를 1958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1967년에 제1·2부를 완성했다. 작품은 227명의 정치범 이야기와 기억·편지를 수록했다. 서방으로 추방당한 1974년에 제3·4부를 완성했고, 1976년 제5·6·7부를 발표했다. 2백자 원고지 1만매가 넘는 〈휴먼 다큐멘터리〉는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고백적 기록문학이었다. 혁명직후 1918년부터 스딸린 격하운동이 한창이던 1956년까지 반세기에 걸친 피의 숙청과 공포의 테러 정치를 고발했다.

6권에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네 번 나왔다. ‘1937년에 의심스러운 수십만명의 한국인들이 조용히, 그리고 재빨리 극동에서 까자흐스딴으로 이동되었던 것이다.’(88쪽) ‘한국인의 강제이주나 또한 끄림반도 지방 따따르인의 강제이주 이래로’(97쪽) ‘또한 한국인들도 까자흐스딴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들은 교육열이 높아서 재빨리 카스흐스딴 지방의 교육 시설을 점령하고 공화국의 지식인층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되었다’(109-110쪽) '꼬끄-쩨레끄의 학급에는 순수한 〈러시아인〉은 거의 없었고, 주로 독일인, 그리스인, 한국인, 소수의 쿠르드인과 체쩬인, 금세기 초엽에 이민 온 우끄라이나인과 카자끄인의 아이들이었다.'(182쪽)

마지막은 미술평론가 힐턴 그레이머(Hilton Kramer, 1928- 2012)의 〈뉴욕타임즈〉 1978년 서평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신문을 읽든, 정치가의 연설을 듣든,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관조하든, 무엇이든 이전과 똑같은 태도로 해내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독자의 영혼에 영원히 흔적을 남기는 바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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