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의 해돋이 시각은 7시 50분이었다. 세 대의 차량이 살꾸지항 선착장에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때는 네 물로 바닷물이 많이 쓸었다. 강화도 외포항 기준으로 고조는 02:46 / 저조는 09:18 이었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리고, 맞이한 일출에서 가장 날씨가 맑았다. 바람은 세찼고, 기온은 영하 10℃ 였다.
여명이 터오면서 실루엣이 점차 형상으로 드러나는 왼편의 산은 강화도 최고봉 마니산이었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관우關羽의 명마名馬로 등장하는 적토마赤兎馬가 떠올랐다. 붉은 빛이 도는 털에, 토끼처럼 빠른 속도로, 이름이 붙었다.
새해는 33년생 닭띠, 어머니께서 우리 나이로 아흔넷이 되셨다. 요양원에 입소하신지 40일이 넘어섰다.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은 명성이 빈말이 아니었다. 작은형과 나는 일주일 간격으로 번갈아 어머니 면회를 다녀왔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볼 적마다 집에 언제가냐고 물으셨다. 나는 마음이 아려왔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와 하루 한번이나마 휴대폰을 통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 손전화를 만지는 어머니는 어려워하셨다. 단축번호를 입력시켰으나 어머니는 제대로 전화를 걸지 못하셨다. 파킨슨병 증상의 하나로 당신은 수면장애가 심하셨다. 새벽 두시까지 잠을 못 이루셨다. 아침에 식사를 하시고 오전 내내 침상에 누워계셨다. 나는 오후에 세 번 전화를 드렸으나 항상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멘트만 흘러 나왔다. 요양보호사 분들께서 대신 전화를 걸어주셨다.
나는 무릎 반월연골판 봉합 재수술로 무릎보조기를 찬 신세가 되었다. 6주차가 지났다. 보름만 견디면 노예의 쇠사슬처럼 불편하기 그지없는 보조기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삼일에 한번 샤워할 때를 빼고, 잠을 자면서도 벗을 수가 없었다. 재수술을 받은 환자로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올해도 여지없이 사단법인 《더불어숲》을 통해 ‘신영복 선생 붓글씨 달력’을 구입했다. 벽걸이용와 탁상용 두 개였다. 붉은 한자로 〈禁酒〉를 출력하여 탁상용 달력의 달마다 붙였다. ‘의지박약자’의 자기다짐이었다. 새해에도 소박한 나의 생활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어머니 면회를 가고,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읽기로 소일할 것이다. 다만 불편한 무릎으로 인해 텃밭농사가 걱정이었다. 〈영농일지營農日誌〉까지 준비했는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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