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나무 위의 남작
지은이 : 이탈로 칼비노
옮긴이 : 이현경
펴낸곳 : 민음사
15여 년만에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의 소설을 잡았다. 내가 읽은 『나무 위의 남작』은 출판사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107’로 2판이었다. 표지그림은 도메니코 뇰리의 〈나무 위의 남작〉이었다. 칼비노는 ‘현대인들의 족보’로 불리는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였다. 《작은도서관》에 비치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을 먼저 손에 펼쳤다. 화자話者는 코지모와 네 살 터울인 동생 비아조였다.
소설은 18세기말 19세기초,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시대, 왕정복고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의 격동기 가상의 공간 옴브로사를 배경으로 했다. 작가가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제시한 남작 코지모는 규범과 관습을 거부하고 자연과 어울려 살았다. ‘동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엮어 시대를 조명한 기발하고 환상적인 우화소설’이었다. 칼비노는 말했다.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해서 유쾌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거짓처럼 들리고 사색적이고 근심어린 목소리를 사용하면 회색빛으로 슬프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1767년 6월 15일 열두살의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정오 정각의 점심식사 식탁에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 아버지 이복동생 삼촌이 마주했다. 집에서 기거하는 수녀 바티스타 누나는 기괴한 요리를 내놓기를 즐겨했다. 코지모는 달팽이 요리 먹기를 거부하고 정원의 호랑가시나무를 탔다. 호랑가시나무, 느릅나무, 쥐엄나무, 뽕나무 나뭇가지로 옮겨 다녔다. 담을 사이에 둔 온다리바 가문의 정원 목련나무로 이동했다. 목련나무 가지에 매단 그네를 타는 비올라를 만났다.
옴브로사 지역은 숲의 세계로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몇 마일을 이동할 수 있었다. 과일도둑 아이들이 떠드는 작고 하얀 말을 타고 다니는 신포로사는 비올라였다. 나무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아들을 보려고 어머니는 세발 달린 망원경을 테라스에 설치했다. 비올라는 후작부인과 고모들에게 등을 떠밀려 기숙사로 떠났다. 삼촌은 베네치아인들이 포획한 오스만 제국의 대형 범선 노예들 틈에서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젓다 발견되었다. 코지모는 점차 나무 위에서 모든 것을 이전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다.
모자라는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가던 에스토막 백작이 우리집에 머물렀고, 누나는 봄에 백작 아들과 약혼했다. 지저분한 옷을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산적 잔데이 브루기는 코지모를 만나고 독서에 빠져 들었다. 산적은 코지모에게 책을 빌려다 은신처에서 책을 읽었다. 바르바리 지방 해적들이 옴브르사의 범선들을 약탈했다. 야밤에 해적들에게 정보를 빼주는 이가 삼촌이었다. 코지모는 마을 사람들과, 동굴에 보석을 숨기고 숨어있던 해적들과 결투를 벌였다. 삼촌은 해적들에게 참수를 당했다. 이복동생의 죽음에 실의에 빠져 아버지는 절망으로 죽었다.
코지모가 올리바바사의 나무 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데 이틀이 걸렸다. 카를로스 3세 국왕에게 반항한 죄로 추방당한 그들은 플라타너스와 누릅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코지모는 우르술라와 사랑에 빠졌다. 일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이 고안한 여러 도구들을 만들어주었다. 스페인 국왕의 사면령이 떨어졌고, 그들은 고향으로 떠났다.
코지모는 미완성 잡문을 『백과사전』의 디드로에게 보냈고, 짧은 답장을 받았다. 천식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톨레마이코 공작의 사냥금지구역에 이르렀다. 죽은 공작은 세 부인을 두었다. 세 번째 새색시, 미망인 후작부인은 사냥터 별장에 머물렀다. 그녀는 코지모가 열두살때 나무위에 처음 올라 만났던 그네 타는 비올라였다. 코지모와 비올라는 사랑했다. 비올라는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종종 몇 달씩을 떠났다. 소문으로 비올라의 문란한 사생활이 전해졌다. 비올라는 영국 귀족과 결혼해서 캘커타에 정착했다.
코지모는 프리메이슨으로 알려졌다. 올리바바사 시절의 예수회 신부 돈 술피시오를 검투로 무찔렀다. 포도 수확하는 농부들을 선동하여 경찰과 세금 징수원들을 몰아냈다. 숲에서 오스트리아-사르네냐 정찰대를 무장해제시키고, 나폴레옹 폭정에서 민중들을 지켜주었다. 예순다섯 살의 코지모는 수족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늙었다. 광장 가운데 떡갈나무로 옮겨왔다. 시험비행하다 돌풍에 휘말린 기구에서 늘어뜨려진 밧줄에 매달려 코지모는 하늘로 사라졌다.
비석의 비문은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나무 위에서 살았고―땅을 사랑했으며―하늘로 올라갔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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