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입국자들

대빈창 2026. 5. 29. 07:00

 

책이름 : 입국자들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산지니

 

부산의 지역 출판사 《산지니》가 반가웠다. 기억에 남는 책으로 부산의 원로작가 고故 이규정(李圭正, 1937-2018) 선생의 3권짜리 장편소설 『사할린』, 1930년대 사할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1990년대 초반 후손들의 사할린 방문으로 마무리했다. 사할린 디아스포라 동포들은 해방될 때 6만 명에 가까웠다. ‘약자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옹호’ 김곰치(1970- )의 르포·산문집 『지하철을 탄 개미』가 인상 깊었다.

병원 가는 길의 《작은도서관》에 들러 대여도서를 반납하고 네 권의 책을 대여했다. 시집 두 권. 환상적 리얼리즘 이탈로 칼비노의 동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초창기 소설,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라디오 PD' 정혜윤의 신간 산문집이었다.

시인 하종오(河鍾五, 1954- )의 시집들은 군립도서관에서 거의 《강화도서관》에 비치되었다. 《작은도서관》 시인의 유일한 시집을 대여했다. 시집은 해설·발문없이 4부에 나뉘어 110편의 시가 실렸다. 양장본의 시집은 239쪽으로 제법 두터웠다. 표지그림에서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 1904-1989)의 〈군상〉을 떠올렸다. 『입국자들』들은 탈북자, 이주노동자, 이주민들의 핍진한 삶을 그렸다. 시인은 그동안 『반대편 천국』(문학동네, 2004), 『국경 없는 공장』(삶창, 2007), 『아시아계 한국인들』(삶창, 2007), 『국경 없는 농장』(도서출판b, 2015)에서 이주민들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형상화해 왔다.

시인의 열일곱번째 시집은 한국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 현지 가족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그렸다. 1부 「국경 너머」 25편은 탈북자들의 고난·가난·그리움을 소재로 했고, 2부 「사막 대륙」 28편은 몽고·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들과 현지 가족들의 삶을 다루었고, 3부 「이주민들」 29편은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생활을 소재로 한 시들, 4부 「귀환자들」 28편은 한국에서 고국으로 귀환한 이주노동자들과 이들을 기다리는 현지 가족의 애환을 담아냈다.

시인은 말했다. “자본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아시아 각 국가와 한국 사이에서 생존하려는 평범한 인간 개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마지막은 「첫눈」(148-149쪽)의 전문이다.

 

방글라데시 남자 파이즈 씨가 / 공장에서 야근하고 / 지하셋방에 돌아왔을 때 / 아이만 잠들어 있었다 // 첫눈에 사랑했기에 /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 아이 낳고 산 한국인 아내가 / 결국 도망쳤다는 걸 / 파이즈 씨는 첫눈에 알았다 // 함께 견뎌내지 못한 까닭은 / 한국에선 가난하게 아이 키우며 / 이웃에게 눈총 받아야 하는 것이고 / 방글라데시로 가면 / 더 가난하게 아이 키우며 / 이웃의 눈치 봐야 하는 것일 게다 // 방글라데시 남자 파이즈 씨는 / 지하셋방에서 아이 달래며 노는 사이 / 공장에서 잘렸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의 가을  (1) 2026.06.02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 2026.05.28
작약과 공터  (0) 2026.05.27
나무 위의 남작  (0) 2026.05.22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  (0)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