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강화꽃동네노인요양원 - 3

대빈창 2026. 2. 19. 07:30

 

맞은편에 앉은 나는 어머니 눈앞에 오른손가락 모두와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여섯을 가리키는 숫자였다.

 

“어머니, 육 년 더 사셔서 백 살 채워야죠”

“지금 같아서는 백 살이 다 뭐냐”

 

당신은 계면쩍다는 듯 엷은 웃음을 지으며 징그럽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1933년 계유년癸酉年 생이었다. 설날 연휴가 끝났고, 요양원에 입소한지 석 달이 지났다. 어머니는 지난 주 세 번의 면회객을 맞았다. 수요일 작은형과 조카와 나는 점심을 같이하려고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필이면 안개로 객선이 결항되었다. 설날을 맞아 작은형은 과일박스를 마련했고, 조카는 할머니의 군것질로 파리바게뜨 매장을 찾았다.

나는 다음날 어머니 면회를 다녀왔다. 주문도 살꾸지항 8시45분 삼보6호 1항차에 승선했다. 곧장 요양원으로 향했다. 면회시간 10시30분보다 30분 앞서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를 발견한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제대로 못 알아들은 나는 이것저것 종이가방에 담았다. 면회실 탁자에 늘어놓은 것은 파스, 물파스, 핸드크림, 관절염 연고 등이었다. 어머니는 가장 먼저 빗을 집었다.

서울 이종사촌한테 전화가 왔다. 이모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셨다. 토요일 마지막타임 오후 3시30분 면회일정이 잡혔다. 나는 이모를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해졌다. 연탄공장 노동자로 고달픔을 술로 달랬던 이모부는 일찍 돌아가셨다. 달동네 수색에 사셨던 이모는 삼남매를 키우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셨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경이 한겨울 세차장에서 찬물에 비누거품을 녹여 차를 닦는 고된 일이었다. 이모는 십오여년 전 수술한 고관절의 시효가 다되었다. 한쪽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작년 겨울, 욕실에 넘어져 몇 달간 병원신세를 졌다. 퇴원하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다. 온 몸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면서도 언니 면회에 나섰다. 자매는 여덟 살 터울이었다. 

밥 잘 잡수셔서 오래 사셔요. 어머니는 없어서 못 먹는다고 웃으셨다. 2년6개월동안 나는 매 끼니마다 반찬 준비에 속을 끓였다. 어머니의 위대함이 새삼스러웠다. 가난한 살림에 어머니는 시어머니까지 일곱 식구의 삼시세끼를 365일 빠짐없이 차렸다. 그 지난한 세월을. 이가 없으신 어머니는 요양원 식사 때마다 잘게 부순 음식물을 받았다. 그리고 미안해하셨다. 당신 때문에 여기 분들이 덧일한다고. 

 

“할머니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시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수도권 대학병원에 들러 2년6개월 전에 촬영한 뇌MRA CD를 복사해 요양원 의무팀에 전달했다. 어머니의 좌측뇌의 뇌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었다. 신경과 담당의사가 연결시켜 준 신경외과 의사의 진단 결과를 듣는 나의 표정은 무거워졌다. 파킨슨병 진단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세가 많은 어머니는 수술이 불가했다. 해가 지날수록 사망확률이 10퍼센트씩 증가한다고 의사는 언도했다. 노인이 자다가 돌아가시는 제일 원인은 심근경색과 뇌동맥류 파열이었다. 어머니는 보름마다 만나는 막내아들을 볼 때마다 집에 가고 싶어했다. 4월 하순, 날이 포근해지면 이틀정도 외박을 신청하여 어머니를 섬에 모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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