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병원은 병을 만든다.

대빈창 2026. 3. 3. 07:00

 

도서출판 《사월의책》에서 펴내고 있는 ‘이반 일리치 전집’ 시리즈는 현재 『그림자 노동』에서 『학교 없는 사회』까지 일곱 권을 펴냈다. 앞으로 서구 문명의 중심을 이룬 기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분석한 『공생공락의 도구』, 의학 분야에서 생소한 '문화적 의인병醫因病'을 다룬 『의료의 한계』 두 권이 더 나올 것이다.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 사상의 핵심 개념은 ‘역생산성counterproductivity' 이었다. 이는 '병원은 병을 만들고, 학교는 학생을 바보로 만들고, 교도소는 죄수를 양산하고, 고속도로는 차를 멈추게 한다.'

열흘 전 주말이었다.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기침이 그치질 않아 협력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어머니는 기관지 염증으로 입원했다. 인천의 작은형에게 급히 전화를 했다. 풍랑·강풍주의보로 객선은 2항차부터 결항이었다. 나는 섬에 고립되었다. 요양원 의무팀에서 전화가 왔다. 4인실 자리가 없어 2인실에 어머니를 모셨다. 문제가 발생했다. 2인실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실로 보호자가 입실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파킨슨 병으로 혼자 거동이 어려웠다. 대소변을 보려면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작은형께 물어보니 어머니는 기저귀를 차고 침상에 누웠다.

환자는 보호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부탁해도 병원은 단호했다. 나는 어머니가 수차례 입원했던 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했다. 대학병원은 협력병원 담당의의 전화가 필요했다. 한시간 거리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어머니를 모실 계획이었다. 협력병원은 퇴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가소로웠다. 나는 작은형께 응급실센터로 내려가 가정산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병원의 태도가 돌변했다. 4인실 그리고 2인실까지 보호자가 모실 수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철면피였다. 환자와 보호자를 우롱해도 유분수지. 작은형은 어머니를 4인실로 모셨고, 보호자가 간병할 수 있었다. 휴일도 바람이 자질 않았다. 어머니 침상이 창가로, 작은형은 이불이 없어 춥다고 했다. 나는 병실에서 며칠 묵는데 필요한 물품을 철저히 준비했다. 월요일 아침배로 섬을 나섰다.

다행스럽게 어머니의 기침이 잦아들었다. 퇴원을 서둘렀다. 나는 얼굴이 핼쑥해진 어머니를 요양원에 다시 모셨다. 섬으로 들어가는 포구로 향하면서 아는 의사에게 물었다. 병원은 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 목을 매냐고. 그의 대답은 정부에서 지원 혜택을 줄 것이라고 했다. 서글펐다. 이 땅의 병원은 스스로 권위를 팽개쳤다. 한갓 돈 몇 푼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폐기 시켰다.  내가 병원이 요구하는대로 고분고분했다면 어머니는 기저귀에 일을 본 채, 시간대별로 병실을 도는 간호조무사를 기다렸을 것이다. 오물로 더러워진 기저귀를 그대로 둔 채. 천민자본주의 병원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준 병은 '홧병'이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란공원 묘지에 다녀오다 - 5  (1) 2026.04.06
봉천가정식백반  (0) 2026.04.01
강화꽃동네노인요양원 - 3  (0) 2026.02.19
유빙流氷의 씨앗  (0) 2026.02.12
강화꽃동네노인요양원 - 2  (1)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