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시절, 나는 적은 액수나마 일곱 단체에 후원을 했다. 그중의 한곳이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에서 수십년 만에 귀국한 문명금 할머니가 4300만원, 김옥주 할머니가 유산으로 2700만원을 내놓으셨다. 할머니들의 마음은 평화박물관의 정신 ‘고통의 연대’로 이어졌다.
‘평화박물관 건립’은 평화 감수성을 개발하고, 평화 문화를 확산하는 평화 운동이었다. 현실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작은 실천을 펼치고,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 나의 고통과 기억, 희망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평화박물관 운동이었다.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꽃샘추위가 한창이었던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역사학자 한홍구(韓洪九, 1959- )의 이메일이 날라 왔다. 공동대표 건축가 정기용(鄭奇溶, 1945-2011) 선생이 향년 66세로 운명하셨다. 서해의 작은 외딴섬에서 두문불출했던 나는 선생의 마지막을 못 뵈었다.
3월 마지막 날, 모란공원 묘지를 향한 발걸음은 5년만이었다. 19년과 21년, 선생의 묘소를 찾다가 헛걸음만 했다. 정문앞 꽃집에서 국화 10송이를 샀다. 차를 끌고 내처 공원묘지 관리사무소로 직행했다. 친절한 여직원이 쪽지를 건네주었다. 길눈이 어두운 나는 “꽤나 복잡한데요” 말을 했다. 그녀가 말했다. “막상 찾아가시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못 찾으시면 전화주세요.”
선생이 돌아가시고 15년 만에 무덤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선생은 건축가로 우리에게 기적의 도서관(순천, 정읍, 김해, 서귀포, 제주, 진해), 노무현 봉하마을 사저로 익숙했다. 나에게 선생은 ‘감응의 건축가’ 였다. 선생은 마치 피할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만 10여 년 간 무주에서 30여 개 건축설계를 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공공건축을 모두 주저하는 그때, 선생은 실비도 안 나오는 경제적 손실을 무릎 쓰고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동안 ‘무주 프로젝트’에 전심전력했다.
진도리마을회관 /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 적상면 주민자치센터 / 부남면 주민자치센터 / 무풍면 주민자치센터 / 공설운동장 / 무주군청 뒷마당 / 무주시장 / 청소년수련관 / 청소년문화의 집 / 곤충박물관과 자연학교 / 향토박물관 / 천문과학관 / 버스정류장 / 농민의 집(농업인회관) / 된장공장 / 전통문화공예촌(무주 만남의 광장) / 보건의료원 / 종합복지관 / 노인전문요양원(평화요양원) / 무주 추모의 집(무주공설납골당)
선산처럼 눈에 익은 민주열사묘역에 들어섰다. 민주주의자 김근태(金槿泰, 1947-2011), 노동운동가 노회찬(魯會燦, 1956-2018), 장산곶매 백기완(白基琓, 1932-2021), 노동자 전태일(全泰壹, 1948-1970), 이소선(李小仙, 1929-2011) 어머니, 1987년 6월 항쟁 박종철(朴鍾哲, 1964-1987), 인권변호사 조영래(趙英來, 1947-1990), 남민전 최후의 전사 홍세화(洪世和, 1947-2024).
통일운동가 문익환(文益煥, 1918-1994) 목사·박용길(朴容吉, 1919-2011) 장로의 묘소로 향하다가 나는 여기서 멈추었다. 한 송이 남은 국화를 헌화하고 눈을 감았다. 김경숙(金慶淑, 1958-1979)은 1970년대 YH무역의 민주노조 운동가였다. 1979년 8월 11일 YH무역 폐업 철회와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는 신민당사 점거 농성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추락사했다. 꽃다운 나이 스물한살이었다.
다음 발걸음에는 많은 국화 송이를 준비해야겠다. 낯익은 분들의 묘소가 눈에 띄었다.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미술평론가 김윤수(金潤洙, 1936-2018), 민중문화운동 춤꾼 이애주(李愛珠, 1947-2021)….
p.s 묘소번호: 특남 9N-200 031)594-6363~2
우회전→달뫼고개(세 갈래 길)→가운데 길(서문, 남문 방향)→남3지구 주차장→남5 분홍정자→오른쪽 길(서문 방향)→화장실(좌측 반사경)→우측 반사경→바닥 주황색 그레이팅→우측 오솔길→왼쪽 납골묘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죽음의 그림자 (0) | 2026.05.26 |
|---|---|
| 강화꽃동네노인요양원 - 4 (0) | 2026.05.11 |
| 봉천가정식백반 (0) | 2026.04.01 |
| 병원은 병을 만든다. (0) | 2026.03.03 |
| 강화꽃동네노인요양원 - 3 (0) |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