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날 전이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한 지 5개월 만에 외출을 단행했다. 날이 풀리면 당신을 섬집에 이틀정도 모시겠다는 약속의 실행이었다. 요양원은 알뜰하게 어머니께 필요한 물품을 건네주었다. 몇 벌의 옷가지와 기저귀였다. 밤중에 소변을 보러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기저귀 대여섯 개가 들어있었다. 파킨슨이 심화되면서 어머니의 다리 움직임은 심하게 불편했다.
당신은 면회 때마다 작은 외딴섬 집을 그리워했다. 요양원 입소 초기에 집이 그리워 이틀 밤을 몰래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사람들보다 오히려 당신이 살던 집이 그립다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집타령은 차츰 수그러들었지만 섬에 가고 싶다는 그리움은 여전하였다. 날이 누그러졌다. 지난겨울의 맹추위에 나는 자면서 몇 번이나 깼다. 지은지 40년을 훌쩍 넘긴 슬라브 벽돌집의 난방은 형편없었다. 심야전기보일러와 전기난로는 황소바람으로 달려드는 한기를 이겨낼 수 없었다. 추위가 닥치기 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포구로 향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식당에서 작은형과 만났다. 어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하고, 통원치료를 다녀오면서 세 모자가 삼겹살을 맛있게 먹은 집이었다. 유리문에 비친 바다건너 풍경은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의 해명산이었다. 다시 삼겹살을 주문했다. 어머니는 섬에 들어간다는 기대에 들떠 점심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오후 1시 출항, 삼보6호 2항차 매표를 했다. 승선시간이 다가왔다.
화장실에 들렀던 나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다. 불치병의 전조증상이었다. 작은형을 급하게 불렀다. 어머니를 다시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고. 나는 승선표를 반환했다. 작은형은 인천집으로 향했고, 어머니와 나는 요양원으로 향했다. 읍내 1차병원 의사는 큰병원의 정밀검진를 권했다. 하필이면 금요일 오후 시간이었다. 수도권 대학병원에 검사를 예약했다. 몇 가지 검진을 받으며 스무날이 흘러갔다. 천만다행으로 불치병은 아니었다. 수술을 이틀 앞두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나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천운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었다. 5월 마지막 주말, 어머니의 외출을 다시 신청해야겠다. 감성이 풍부한 어머니의 가슴에 맺힌 그리움을 풀어드려야겠다. 면회를 간 나에게, 어머니는 섬에 들어가다가 무슨 사정으로 되돌아 온 것을 크게 아쉬워하셨다. 다행스럽게 어머니의 정신은 온전하셨다. 형제는 주일마다 번갈아 어머니 면회를 다녀왔다. 이틀 뒤에 당신의 면회를 간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가 답했다. 당신은 항상 자식들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매일 목소리를 듣는데, 자주 오지 말아라. 두 달에 한번만 와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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