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공간의 종류들
지은이 : 조르주 페렉
옮긴이 : 김호영
펴낸곳 : 문학동네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1936-1982)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였다. 작품 활동 기간은 15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소설, 시,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미술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도전적인 실험정신과 탁월한 언어감각, 방대한 지식, 풍부한 이야기, 섬세한 감수성으로 종합적 문학세계를 구축한 대작가였다. 20세기 후반 독특한 실험문학모임 ‘울리포OuLiPo'의 일원이었다.
『공간의 종류들』은 1974년작으로 페렉이 생전에 낸 유일한 에세이였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1932-2018)가 기획하는 출판사 《갈릴레》의 ‘비평공간L'espace critique' 총서 첫 권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현대의 도시공간에 대한 사회학적 의미를 묻는 페렉의 작품세계를 본 비릴리오는 '공간'을 주제로 글을 쓰면 좋겠다고 언질했다. ‘공간의 우화집’이라 칭한 페렉은 서문에서 말했다.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페이지 - 이 기호들만으로도 위와 아래가 생기고, 시작과 끝, 오른쪽과 왼쪽, 앞면과 뒷면이 생긴다.
침대 - 침대는 우리가 대체로 수평 자세로 머물 수 있는 드문 장소 중 하나다.
방 - 그것은 아마도 방이라는 공간이 내게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 내가 보기에 어쨌든 오늘날 아파트의 전형적인 분할에서, 기능은 단일한 목적을 갖고 있고, 연속적이며, 생리적 리듬을 고려하는 방식에 따라 작동한다.
건물 - 源氏物語绘卷은 12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에 제작된 ‘겐지 이야기 그림 두루마리’로 모든 그림은 후키누키 야타이(吹抜屋台) 방식, 즉 지붕을 들어내고 내부의 장면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그려냈다.
거리 - 평형으로 줄지어 서있는 건물 두 열이 우리가 거리라고 부르는 것을 규정한다.
구역 -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는 곳을 구역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거주 장소와 일하는 장소는 거의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도시 - 도시라는 개념 자체에는 끔찍한 무엇이 존재한다. 우리가 비극적이거나 절망적인 이미지들에, 즉 메트로폴리스, 무기질 세계, 화석화된 세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느낌, 우리가 대답 없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느낌말이다.
시골 - 일요일 오후 자연으로의 복귀를 예찬하면서 남은 주간 동안 버텨야 할 도시로 돌아가기 전에 기운을 내어 몇 미터 정도 지나가는 공간이다.
나라 - 국경은 선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선 때문에 죽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 선을 넘는데 성공하지 못해 죽었다.
세계 - 세계는 하나의 의미를 찾는 일, 지상의 글쓰기에 대한 자각이자, 우리가 그 저자임을 잊어버린 어떤 지리학에 대한 지각같은 것이다.
공간 - 공간은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사라진다. 시간은 공간을 데려가 형태를 알 수 없는 조각들만 내게 남겨놓는다.
페렉은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무용한 것들, ‘일상 하위의 것infra-ordinaire'들에 한없는 애정을 보인 작가였다. 책은 하나의 페이지에서 침대, 방, 아파트, 건물, 거리, 구역, 도시, 시골, 세계에 이르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각 층위마다 공간에 대한 세세한 서술과 사색이 뒤따랐다. ‘조르주 페렉 선집 6’으로 출간된, 책의 표지사진은 시리즈 중 가장 높게 변형된 페렉의 추상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