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사물과 사람 사이
지은이 : 이일훈
펴낸곳 : 서해문집
『뒷산이 하하하』(하늘아래, 2011), 『제가 살고 싶은 집은』(서해문집, 2012)에 이어 세권 째 잡은 건축가 이일훈(李日薰,1954-2021) 선생의 책이었다.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의 철학을 권유하는 설계방법론 ‘채나눔’을 주장하는 건축가”를 너무 늦게 만났다. 신간 『다시, 모형 속을 걷다』(바다위의정원, 2025)를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야겠다.
‘도시산책자의 눈으로 바라본 나무와 공간과 동네와 세상’의 부제를 단 『사물과 사람 사이』는 〈경향신문〉에 5년 넘게 연재됐던 ‘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에서 가려 뽑은 150편이 실렸다. 선생은 늘 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사물들의 말을 듣고 찍었다. 나무와 공간과 동네와 세상을 카메라로 훑고 일상에서 사물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했다. 선생은 서문 「있고 잇고 잊는……, 사물의 말이 들리시나요?」에서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우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를 의미 있게 하는 관계와 현상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5쪽)
1부 ‘나무와 사람 사이’ 44편은 숲·나무·새·꽃들이 품은 그늘진 말들을 적었다. 콘크리트 가짜나무, 전시용 공원公園, 상징새 까치 포획, 온전하게 유지하는 자연만이 미래의 자원, 콘크리트 동물모형, 비무장지대는 비개발지대로, 규모와 에너지 소비가 적을수록 좋은 건축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편에 선 목회자, 행사용 새집은 숲속의 쓰레기, 조경공사 현장의 녹색그물, 생태는 없고 디자인 의도만 있는 풍경, 돈만 좇아 파헤치는 싸구려 풍경, 몰래 톱질해 죽이는 수십년된 아까시나무, 밤낮을 바꾸는 기계설비와 인공장치, 석유 태워 얻은 전력으로 솟구친 분수.
2부 ‘공간과 사람 사이’36편은 주변 건축이 우리 삶을 편안하게 감싸지 못하고 거칠게 몰아치는 위선의 풍경을 담았다. 가짜 자연무늬, 소박하고 진지한 건축, 상량식은 소통을 위한 대화의 장치, 일하는 오토바이 디자인의 눈물, 컨테이너의 과용·오용·남용, 소멸의 방식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건축, 바람이 통해야 건강한 건축, 컨테이너 명부전冥府殿, 무조건 유행하는 통유리창, 자전거 뒷바퀴와 손수레의 짐칸을 붙인 현장용 자전거 수레, 쓸데없는 디자인은 시각공해, 시대적 아픔과 부끄러움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교훈, 눈만을 위한 장식은 집의 비극, 공사 현장의 수세식 화장실, 돈만 되면 닥치는 대로 부수는 재개발.
3부 ‘동네와 사람 사이’ 38편은 동네의 사물과 사람 사이 소소한 풍경을 살폈다.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는 자신과 연결되는 관계의 거리, 알록달록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오해, 일상적 길의 안전과 편안함이 기본, 변두리 풍경이 도시의 자화상, 바람·풍경도 막히는 방음벽, 전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일방통행, 억지의 특별보다 자연스런 보통이 높은 경지, 돈 욕심을 감춘 파괴 개발, 벤치에 눕지 못하게 하는 세로 철물,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최고의 자연감상법, 안내를 빙자한 무책임과 강요, 불안과 위험을 알면서 주의와 경고문으로 버티는 불순한 의도, 자연의 냄새가 진한 도시가 좋은 도시, 획일성의 폭력 고속도로 휴게소.
4부 ‘세상과 사람 사이’ 32편은 다양한 세상 풍정을 모았다. 속인보다 못한 시정잡배로 전락한 종교인, ‘촬영금지’라는 너무 뒤진 풍경, 절판되거나 잊히고 묻힌 책들의 사바세계 헌책방, 교통문제 해법은 교통수단 아닌 사람, 개인주차장으로 쓰려고 도로에 내놓은 의자, 교통법규를 어기는 관용차, 강원 홍천 ‘아홉사리로’ 길가의 까치집식당 간판위 제비집, 진정한 세계화는 공동체 정신의 세계화, 독재시대의 ‘스마일 운동’, 시드는 것이 진정한 생명, 걱정스러운 엉뚱함은 일상의 불안을 증폭, 옷·밥·집은 살아가는데 기본요소, 눈이 언 아스팔트에서 미끄럼 놀이를 즐기는 어른, 돈의 풍향만을 따르는 재개발 깃발, 눈 덮인 달동네 삶은 미끄럽고 위태로운 현실.
건축가 故 이일훈 선생은 빼어난 글쟁이였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만들고 그리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축가가 되었다. 건축가는 지은 집이 아닌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선생은 자택自宅에 대한 욕망을 가질 정도로 한가롭지 못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