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란씨
지은이 : 배지영
펴낸곳 : 민음사
초판 출간된 책을 즉시 구입하고도 이제야 책을 잡았다. 표제작 『오란씨』는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분 당선작이다. 이외 단편 여섯편이 한데 묶여 신예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출간되었다. 나의 책장에는 신춘문예당선작품집이 ‘81년부터 2003년까지 순서대로 꽂혀 있다. 80년대말 서울 변두리의 책방에 둘렀다가, 구석진 곳에서 손님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몽켜있던 작품집을 일괄구입 했다. 그리고 게으른 나는 졸업논문을 ‘80년대 신춘문예 당선소설 문예경향’이라는 각주 하나 없는 급조된 글로 때웠다. 강박적 편집증이었을까. 공장생활을 하면서도 이 빠진 구석 하나 없이 년초가 되면 나는 작품집을 손에 넣었다. 그러다 어떤 연유였는지, 아마 책값이 아까웠을 것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 상에서 당선작을 출력해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의 표제를 보는 순간,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익숙하되 낯설며, 친숙하되 섬뜩한’ 5년 전의 「오란씨」가 강렬하게 나의 기억을 자극했다.
「오란씨」에는 20여 년 전의 서울 변두리 모래내의 비루한 인간 군상들인 공중변소 장사치, 매미집 작부, 개잡는 백정, 양아치보다 더한 순경 등의 습속이 실감나게 묘사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학생 때 처음 보았던 수색 달동네에 사시던 이모네가 자연히 떠올랐다. 아침이면 공중변소 앞에 나래비를 서던 이 땅 변두리의 절대약자들의 행렬. 시커먼 촌놈이었던 나의 눈에 비친 배설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그네들의 생활은 말도 되지 않는 낯설음이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오오 오란씨”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가장 귀에 익은 CM송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데 요즘 이 노래가 다시 TV 광고를 타고 있다. 청량음료 ‘오란씨’의 CM송이다. 가난했던 그 시절. 소풍가는 아이들 가방 속에는 청량음료와 삶은 계란이 꼭 들어갔다. 내가 서울을 처음 구경한 것은 2박3일의 국민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그때 어머니는 나의 가방에 오란씨와 삶은 계란을 챙기셨을까. 기억이 없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어머니는 용돈으로 300원을 나의 손에 집어 주었다. 촌놈인 나는 길거리의 뽑기에 환장을 했었나보다. 지금 기억에도 몇 자루의 장난감 총이 나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때 서울의 공중변소는 유료였다. 일 한번 보는데 5원을 요구했다. 수중에 돈이 없던 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또래들한테 비싼 모형 총을 단돈 5원에 바꿔 급한 생리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총도 떨어지자, 마지막 날에는 어느 궁궐 후원의 숲속에서 급히 일을 해결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단편에는 ‘슬로시티’ 연작이 3편 있는데, 현대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드러냈다. 「버스」는 성폭력의 만연, 「몽타주」는 연쇄살인, 「파파라치」는 몰카의 성행이 소재였다. 나머지 작품에는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약육강식 법칙에서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검정 원피스를 입다」는 사회적 상징으로 금지된 여고생들의 금지된 사랑 동성애를 다루었고, 「어느 살인자의 편지」는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정신적 동물로 타락한 인간 말종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나는 마지막 소설 「새의 노래」가 가장 인상 깊다. 외딴 섬에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공장을 건설하면서 파괴되는 공동체와 더 나아가 섬 자체의 파멸을 보면서 새만금과 4대강사업을 강행하면서 녹색성장을 떠벌리고, 후쿠시마 피폭에도 여전히 핵발전소 건설에 매진하는 정신 나간 이 땅의 그로테스크한 현실이 작품 속에 그대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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