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소금꽃나무
지은이 : 김진숙
펴낸곳 : 후마니타스
저 문을 열어라/열다섯 시내버스 여공으로 시작해/스물다섯 최초의 여성용접공으로 시작해/대공분실 세번 다녀오고 징역생활 두번 하고/수배생활 오년 하고 나니/머리 희끗한 쉰두살이 되어 있더라는/저 아픈 여인이 스스로 잠가버린/저 절망의 철문을 열어라.
노동자 시인 송경동의 '3차 희망버스를 준비하며'의 2연입니다. 올 여름에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시집을 잡았습니다. 님이 크레인에 올랐을 때 ‘노무현 변호사님, 다음 生에는 우리 노동자로 만나요’라는 지난 글을 온라인 신문 프레시안을 뒤적여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 오늘로 님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가 꼭 300일이 됩니다. 근 일주일간 저는 책장을 천천히 넘기면서 목울대가 컥 막히면서 눈앞이 물기로 침침해져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먼데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솔직히 저는 김진숙 님을 잘 몰랐습니다. 여기서 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님을 동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뻔뻔 스럽니다. 한때 저도 그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 위에 서있다는 신념으로 뭉친 젊은 한때가 님의 글을 읽어가면서 화인을 찍듯이 눈앞에 떠 오릅니다.
봉제공장의 시다, 해운대 해변의 아이스께끼 장사, 신문팔이, 싸구려 화장품 외판원, 시내버스 안내양. 그 서럽고 고단한 삶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땅의 최초의 여성 용접공으로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의 노동자가 됩니다. ‘아다리 먹는다’고 하나요. 30여년전 고교을 막 졸업한 저는 국풍(國風)인 지 지랄인 지가 여의도 광장에 모래바람을 일으킬 때 시골 읍내의 농기계 대리점에 사회 첫발을 내 딛습니다. 처음 배운 일이 용접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하지만 저는 기계치에 가깝습니다. 마스크를 쓰면 용접할 자리를 찾을 수 없었고, 맨눈은 눈이 시려웠고, 요령껏 첫 방을 지지고 마스크로 얼른 얼굴을 가렵습니다. 그날 밤 저는 왕모래가 눈알을 마구 비비는 고통에 밤새 울었습니다. 머리맡에서 안절부절 하시던 어머니. 옆집 아줌마가 사과를 간 즙을 눈에 넣어주시니, 좀 참을 만 했습니다.
20여년 전인 91년. 그때 저는 안산공단의 화공약품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봄 저는 안양에서 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전노협 남부노련. 저는 퇴근시간이 되면 자취방으로 달려가 작업복(땀이 말라가면서 허옇게 바랜 소금꽃이 핀)을 벗어 던지고, 부리나케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안양으로 향했습니다. 안양병원의 박창수 위원장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양대로에서 시가전을 하다 마지막 전철을 타고 저는 안산 고잔동 지하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날 밤. 고립무원의 느낌에 눈을 뜨니, 마지막 전철의 한 칸에 저 혼자 손잡이에 매달려 졸고 있더군요. 최루가스에 승객들이 다른 칸으로 옮기신 거죠. 그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요. 그날 밤은 봄비가 장대비처럼 심하게 쏟아졌어요. 병원 안뜰 비닐천막의 낙숫물 돋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합니다. 여섯 살 용찬이가 아빠 영정을 들고 앉아 있었어요. 저는 코끝이 시큰해져 이내 병원문을 나서고 말았지요.
8년 전인 2003년 님이 올라가 있는 그 크레인에서 김주익 지회장이 똑같이 홀로 농성하다 129일 만에 목을 맸습니다. 그리고 2주뒤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에 몸을 던졌습니다. 천길 벼랑 앞에 선 님의 몸 상태가 1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소식 듣고 있습니다. 제발! 마음 다잡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책을 읽고서 님이 강화도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면회를 가시기 위해. 아버지가 다리를 쩔룩이면서 부산을 찾았을 때. 조카가 정신병자가 되어 돌아왔을 때. 남동생이 설날에 노숙자로 죽었을 때. 고통의 가족사를 30여년 동안 묵묵히 버텨내는 님의 큰언니가 사시는 외포리 ‘차부상회’를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주문도에 살고 있습니다. 강화 읍내 일을 보러 나왔을때나, 집에 돌아 올려고 배터를 가려면 어김없이 ‘차부상회’를 지나칩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차부상회’를 바라보는 저의 눈길은 그 전과 다르겠지요. 미안합니다. 저는 아직 ‘희망버스’에 탑승을 못했습니다. 외딴섬에 산다는 핑계로 게으른 자신을 자꾸 합리화시키려 듭니다. 이 책을 구입하고서 적은 금액이나마 인권재단에 후원금으로 자동이체를 신청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외포리에 내릴 적마다 도저히 ‘차부상회’를 지나칠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아무쪼록 내년 설날 외포리 큰언니집 ‘차부상회’에서 자매가 오랜만에 따듯한 떡국을 같이 드시길 바랄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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