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

대빈창 2011. 11. 14. 03:06

 

 

책이름 :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

지은이 : 김진송

펴낸곳 : 현문서가

 

"설계도를 보고 똑같이 쇠를 깎아 주형을 뜨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걸 어렵다고 엄살 부리면 못 쓰는 거야."

 

머리가 허옇게 센 기술 선생이 말했다. 선생은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았는데 평교사였다. 그러기에 오래된 그 일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기술시간이었다. 트레이싱 페이퍼에 나는 원을 그리고 있었다. 연필을 떼지 않고 한번에 동그란 원을 완성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정규수업이 끝나면 미술부로 달려가 매일 데생을 한다는 화가 지망생으로 내세울 일은 아닌 모양새였다. 단순할 것 같은데 쉽지가 않았다. 선생은 그럴듯한 원을 그리기 위해 지우개를 덴 위치를 귀신이 곡할 만큼 정확히 잡아냈다.

김진송은 국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후 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 미술사 연구자, 근대사 연구자, 출판기획자 등 화려한 이력을 지녔다. 책장에 『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상상목공소』가  꽂혀 있다. 저자가 1998년 돌연 고향 남양주로 내려가 ‘목수 김씨’의 삶을 살며 펴낸 책이었다. 문학을 전공하고 미술에 관심이 많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의 대부분은 문학과 미술 관련서였다.  저자의 책은 공예분야 세 권에 나의 호기심이 끌렸다. 그러기에 책을 되새김질하면서 고교시절 기술 시간의 에피소드가 떠올랐으리라.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었고, 79편의 이야기에 116개의 작품이 등장했다.

목수의 기발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들의 재료는 쪽동백나무, 단풍나무, 흑단, 엄나무 등 다양했다. 작품은 나무가 주종이지만 삽날, 자귀, 볼트, 자동차 라이닝, 철근 등도 이용되었다. 이야기는 단 한 줄로부터 단편소설 분량의 긴 이야기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독자는 저자의 탁월한 글 솜씨와 기발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앞서 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에서 소개했듯이 저자의 작업실은 남한에서 나무 종류가 가장 많은 경기도 마석 축령산 자락에 손수 빨간 벽돌로 지었다.

목물은 제재목이 아닌 천연목을 생긴 모양 그대로 깍고 다듬어 완성했다. 버려진 자연목을 예술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은 2011년 ‘제13회 교보생명환경대상’ 수상자로 목수 김진송을 선정했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들은 ‘메뚜기 우주선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치즈를 훔쳐 먹은 쥐’, ‘바그다드의 새 동상’, ‘사이보그를 꿈꾸는 아이’ 였다. 작품들은 지구생태 위기, 인간의 끝없는 물질적 탐욕 추구, 미제국주의의 이라크 침공과 약탈, 유전자 조작 및 장기이식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현실비판이 담겨 있었다.

저자가 미술계를 떠나 고향 집으로 돌아가 목수의 길을 걷게 된 연유는 천민자본주의의 승자독식이라는 진저리나는 천박성이 고상(?)한 미술계를 접수한 것에 대한 분노가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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