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대빈창 2011. 11. 17. 05:20

 

 

책이름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지은이 : 유하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당신을 넣어보라 당신의 와꾸를 디밀어보라 예컨대 나를 포함한 소설가 박상우나/시인 함민복 같은 와꾸로는 당장은 곤란하다 넣자마자 띠― 소리와 함께

 

‘욕망의 통조림 또는 묘지’라는 부제가 붙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63 ~ 65쪽)’의 부분이다. 그렇다. 시집이 출간된 지 20여년 만에 손에 잡은 것은 순전히 시인 함민복 때문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꾸준하게 시집을 찾았다. 내 손에 들어 온 시집은 2010년 재판 14쇄 발행본이다. - 산 병어 안주로 술을 먹은 후 우리의 에피소드는 더 이어진다. 나는 그 일을 혼자 '말죽거리 잔혹사와 쌍절곤'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사건은 시인 함민복 얘기가 나올 기회가 오면 다음에 털어 놓겠다. - 2007년 9월 시인의 산문집 ‘미안한 마음’을 읽고 포스팅 한 글 마지막 부분이다. 이후 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와 산문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라는 글을 접하면서 시인의 안부만 전했지 막상 ‘그 사건’을 밝히지 못했다.  기회로 생각한 시인의 새 시집 출간이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유하 시인의 시집을 잡았다.

그날 만취한 우리는 동막리 시인의 집으로 향했다. 마루에 올라 선 시인이 난데없이 쌍절곤을 빼들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인지라 나는 극구 말렸지만 시인은 리듬체조하듯 자유자재로 쌍절곤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무아지경에 빠진 무림고수의 초절정 무공을 보는 듯 했다. 하긴 우리 세대는 이소룡에 흠뻑 취한 세대이지 않았던가. 시인이 저 정도의 기량을 쌓으려면 뒤통수 깨나 터졌을 것이다. 이후 나는 어디선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뒷얘기를 귀동냥했다. 쌍절곤을 돌리는 장면에서 유하 영화감독은 친구 함민복을 대역으로 쓰려고 했단다. 그런데 몸매가 따라주지 않아 포기했다고 너털웃음 터뜨렸다. 막역한 친구 사이에 통할 수 있는 얘기였다. 하긴 언젠가 나도 시인에게 유하 감독과 함께 간 ‘경마장 ’에 관한 얘기를 얻어들은 적이 있다. 속편이 나온다면 시인으로 대역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시인의 몸이 아주 날렵해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에 아주 자세하게 밝혔다. 이 시집은 시인의 처녀시집 ‘무림일기’에 이은 두 번째 시집으로 1991년에 발행되었다. 이후 시인은 영화감독으로 대중에게 다가섰다. 1993년에 시집의 표제와 같은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쌍화점’ 등이 유하 감독의 작품이다.

압구정은 수양대군 반정의 일등공신인 칠삭둥이 한명회의 정자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친할 압(狎), 갈매기 구(鷗)로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낙향해 갈매기를 벗삼아 산다는 정자라는 의미였다. 온통 배나무 밭으로 한적한 경기도의 시골이었던 압구정은 시인이 태어난 해인 1963년에 서울에 편입되었다. 부동산 투기, 강남 불패, 8학군, 위장전입, 오렌지족, 야! 타! 족, 로데오 거리 등 개발과 투기 열풍이 빚어낸 퇴폐와 향락의 대명사로 내게는 이 땅의 ‘소돔과 고모라’로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베스트셀러였던 이 시집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시인은 ‘도시의 무서운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북 고창군 상하면의 하나대라는 작은 부락을 고향으로 둔 농촌문화의 몰락을 생태위기로 보는 문명 비판적 시들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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