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도마을을 향해 걸어 내려오는 나는 작열하는 햇살에 머리속이 허옇게 메말라 들어갔다. 잔등에 걸쳐진 배낭무게가 점점 힘겹게 조여드는데 때아닌 폭포수 물소리가 머리속을 파랗게 물들였다. 그 소리는 길아래 계곡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읫소에 고인 물이 천연보를 이룬 길쭉한 바위에 막힌 아랫소에 낙하하며 흰포말로 흩어졌다. 차시간이 충분하지라 나는 계곡에 내려섰다. 아랫소에서 소용돌이치며 거슬러 오르는 물살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윗소로 흘러드는 물줄기의 하나가 땅콩모양의 구멍을 만들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줄기가 굽이치며 휘돌아드는 물결무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사가 출간한 ‘자연사기행’을 눈동냥한 것중 강물이 깍아낸 신기한 조각작품이라는 부제를 단 가평천 돌개구멍(pot-hole)과 모양이 흡사했다. 바위를 절탁하는 물의 힘. 나는 오늘 들러 본 화엄사와 연곡사의 이미지를 머리속에 그렸다. 번잡스러울 정도로 한껏 치장한 화엄사가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미니스커트에 배꼽티를 걸친 도시아가씨라면 연곡사는 검정치마에 흰저고리를 입은 수줍음 잘타는 시골처녀 같았다. 혼자만의 답사길이라면 나는 연곡사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평도마을 매표소는 슈퍼마켓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쌍계사를 찾는 나에게 교통이 불편하다며 차편을 주선했다. 소개받은 사람이 당치마을 이장 이정운씨로 나보다 한살이 위였다. 쌍계사를 들러본 뒤 다음 일정은 함양 화림동 계곡이라는 나의 말을 듣자 그는 남원 인월에 가야 함양행 차편이 있다고 자세히 일러 주었다. 나는 '남도, 1996년 여름'에서 담양 무등산계곡의 소쇄원을 놓친 아쉬움이 되살아나 남원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실상사로 목적지를 급선회했다. 실상사로 가는 길은 어제 소선생가족과 화엄사를 찾아 오던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즉 섬진강을 왼손으로 맞잡고 동행하는 길인 것이다.
섬진강. 우리가 배워왔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고또분지로식의 구조선과 산맥 개념의 지질구조도로는 나타낼 수 없는 강이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의 줄기가 제멋대로 섬진강을 넘나든다. 내방의 컴퓨터 모니터 윗벽에는 『산경표를 위하여』 특별부록으로 나온 백두대간도가 붙어 있다. 섬진강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에 갇혀 있다. 즉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은 물길의 젖줄이자, 울타리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능선을 따라 그은선인 마루금 표시와 물길표시를 합치면 정확히 요철처럼 맞추어진다. 우리 전래의 지리서인 산경표는 실존하는 산과 강에 기초하여 산줄기를 그렸기에 실제 지형과 일치한다.
피아골에서 토종벌을 치며 민박집을 겸하고 있는 당치마을 이장 이정운씨는 지리산에 단풍이 들때 시간내서 다시한번 찾아오라며 명함을 건낸다. 그는 서울에서 고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 천성이 맞질 않아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짖는다고 했다. 그가 말하기를 피아골의 단풍이 여느곳보다 붉은 것은 한국전쟁후 피아골이 빨치산의 아지트로 군경의 대대적인 토벌 공세에 당시 죽은 이의 넋과 피가 나무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란다. 극악스러울 정도로 모진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이 그의 입을 통해 나올줄은..... 우리는 2시간 30분거리를 달려와 해가 서편으로 기울 때 산내면 소재지에 닿았다. 그의 누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나는 고마움을 추어탕으로 보답했다. 실상사 경내를 돌아보며 그는 자신이 알고있는 만큼 자상하게 설명을 덧 붙였다.
실상사의 관람료는 1,500원이다. 관람권 전면에는 동서삼층석탑을 측면에서 포커스했는데 주위에 붉고 흰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사적지 제309호 실상사 안내>
-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홍척국사께서 창건하신 구산선문 가운데 최초 개산도량이다. 지리산 천왕봉 서쪽분지에 위치한 실상사는 마치 웅장한 지리산 줄기를 꽃잎처럼 휘감은 모습으로 옛부터 훌륭한 수행승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현재 선우도량의 근본사찰로써 화엄학림이 있다. -
그리고 아래 문화재 현황을 나열해 놓았다. 국보 제10호 백장암삼층석탑(9세기 중엽)과 보물 제33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905)를 비롯한 보물 11점, 지방유형문화재 제45호 극락전(1684)외 2점, 중요민속자료 제15호인 석장승 3기로서 경내가 비좁을 정도로 단일 가람으로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실상사 경내로 향하려면 계류에 걸쳐진 해탈교를 건너야 한다. 계류 양안에는 2쌍의 돌장승이 서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에 있던 돌장승 하나는 1963년 홍수때 유실되었다. 다리를 건너면 길가 양쪽에 한쌍의 돌장승이 여행객을 마중나와 반겨준다. 왼편 마을나무의 그늘아래서 따갑게 내려쬐는 햇빛을 피해 서있는 대장군은 입을 비쭉거리며 조소하는 표정이다. 맞은편 상원주장군은 턱수염이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게는 흡사 뙤약볕아래 이빨을 드러내고 신음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상사 장승은 사찰장승으로서 부처님에게만 표현되는 백호처럼 양미간 사이에 유두돌기가 있다. 사찰의 권위를 등에 업은 힘있는 장승인 것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진입로를 걸으면 오른쪽은 더덕밭이고, 왼편은 어느새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이 펼쳐졌다. 실상사에서 마천방향으로 멀리 바라보면 이등변삼각형꼴의 넓은 골짜기가 펼쳐졌고, 논길을 200m쯤 걸어 불이문을 향해 직각으로 꺽어들면 좌우로 해바라기와 옥수수가 이열횡대로 도열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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