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江都를 가다

프롤로그 : 강도(江都)를 가다

대빈창 2012. 2. 20. 06:00

 

나는 매년 한 여름에 배낭을 메고 일주일동안 답사 여정에 올랐다. 그동안 나의 발길은 지리산자락주변, 전남, 전북, 충남지역을 떠 돌았다. 나는 어줍잖게도 족적을 반추하며 남도 1996년 여름, 뜬돌과 낮꿈, 천왕봉이 지켜보는 여정,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라는 글을 한 기관지에 연재했다. 나의 답사 여정은 불편하지만 목적지까지 장거리는 열차를, 지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 이유는 고미술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전문적 안목보다는 어설픈 감상과 그땅 사람들의 삶의 편린을 단편적으로 서술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문화유산에 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학고재신서1으로 출간된 故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잡고부터였다. 그후 고미술 전문서적 출판사인 학고재에서 신서가 연이어 출간되면서 나의 관심은 깊이를 더해갔고, 친절하게도 돌베개에서 답사여행의 길잡이 시리즈가 권역별로 출간되어 문외한에게도 직접 현장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98년 하지를 지나면서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올 답사지역을 물색하는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답사는 한산한 시기일수록 여행객에게 더욱 많은 것을 보여준다. 휴가 피크에는 사람들에 치여 볼것도 제대로 못보고 황황히 발길을 옮길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년 나의 답사는 수마의 시샘으로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여름장마는 언론에서 그럴듯하게 이름을 붙여 주었듯이 예의 민첩성으로 전 국토를 유린했다. 게릴라성 폭우. 19C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했을때 민중들의 투쟁방식에서 연유한 게릴라는 무장한 비정규군으로 다발적인 소규모 전투로 침략군을 크게 괴롭혔다. 지난여름 폭우는 말그대로 게릴라식 집중폭우를 퍼부어댔다. 기상청이 생긴 이래 하루 최고강수량 619mm를 기록한 강화지역의 큰물 피해는 엄청났다. 눈을 들면 산정은 스키플로어처럼 산사태가 일어나 시뻘건 황토를 드러냈고, 들녘은 거대한 바다로 변했다. 당연히 답사는 연기되었다.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의 수해복구 작업으로 어느 정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을 때는 바람결에 가을이 묻어 있었다.

9월 중순. 나는 뒤늦은 답사길에 올랐다.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눈길은 어두웠고, 입끝에는 무거운 한숨이 매달렸다. 예전처럼 마음놓고 이름난 문화유산을 찾아 먼길을 떠나는 것을 마음이 허락치않았다. 짧은 시간에 강화지역을 돌아보기 위해 그동안의 답사여정 금기를 깨뜨리고 나는 중고지프에 몸을 실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6개월전의 여정을 반추하기 위해 모니터위 벽면에 강화군안내지도를 부착시켰다. 메모노트와 4롤에 담겨진 강화군의 문화유산과 기념물을 찍은 사진이 뇌세포의 주름속에 갈무리된 기억의 출력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섭렵한 인문지리 관련서적이 글의 행간을 메꾸어 줄 것이다. 글의 순서는 각 지역별 문화유산이나 기념물 그리고 자연경관을 찾아가는 답사의 동선(動線)을 기본축으로 그때 나의 발길이 닿지못한 곳을 뒤늦게 찾아 첨부했다. 제목은 일본에서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고(故) 시바료타로의 ‘가도(街道)를 가다’에서 유추했다. 그의 글중 한나라기행과 탐라기행이 학고재산문선 5, 6으로 작년에 뒤늦게 출간되었다.(계속)

 

p.s '강도(江都)를 가다'는 '99년 ~ 2000년  강화도 지역신문인 격주간지 '경인열린신문'에 1년간 연재되었다. 연재시에는 답사하며 찍은 강화도의 문화유적과 자연풍광을 담은 필름 사진을 실었다. 세월은 흘러 사진은 바랬고, 이미지는 검색엔진 구글의 힘을 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