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갈보 콩

대빈창 2012. 5. 29. 05:15

 

 

책이름 : 갈보 콩

지은이 : 이시백

펴낸곳 : 실천문학사

 

내 책장 한켠에는 세계문학상 수상작이 2005년 제1회 김별아의 ‘미실’부터 순서대로 꽂혀있다. 수상작은 매년 3, 4월에 한권의 단행본으로 출간 된다. 올해 제8회 수상작은 전민식의 ‘개들을 산책시키는 남자’다. 이 책은 나의 온라인 서적 카트에 서너번 넣어졌다가 뺐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음을 굳혔다. 세계문학상 수상작도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마찬가지로 나의 독서목록에서 왕따 시키기로 작정했다. 제7회 수상작인 강희진의 ‘유령’이 아직 나의 손길을 책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글머리인가. 시골에서 생활하는 잘 팔리지 않는 전업 작가의 단편소설집 서평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꾸준히 책갈피를 펼쳤던 두 권의 문학상 작품집을 팽개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럼 기계적, 습관적으로 그 책들을 손에 잡았다는 뜻인가. 분명 그렇다. 소아병적 편집증도 단단히 한몫 했을 것이 틀림없다. 표사에서 작가 송기원이 말한 것처럼 ‘우리 문학 혹은 소설 혹은 농촌소설이 아직은 희망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가의 작품집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타계한 이문구의 농촌소설에서 진짜 소설 읽는 맛을 느꼈었다. 그런데 선생이 떠나시고, ‘민중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아는 미덕을 담은’소설들, 즉 맛깔스러운 민중서사를 다룬 소설을 아둔한 나는 눈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 ‘예술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을 기만하는 신기루 같은 예술지상주의 소설’들만 득시글거렸다. 그런데 아둔한 나의 뒷통수를 후려 친 것은 역시 ‘녹색평론’이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갈보 콩’을 나는 녹색평론에서 읽었고, 작가 이시백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100만번 주사위 던지지’, ‘누가 말을 죽였을까’를 잡았고, 기대되는 소설 ‘종을 훔치다’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또다른 농촌소설 작가인 최용탁의 ‘미궁의 눈’과 ‘즐거운 읍내’가 꽂혀있는 책장에 눈길을 던지는 나는 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시백과 최용탁. 이 건강한 두 농촌소설 작가가 나의 눈에 뜨임으로서 나는 그동안 연례행사였던 두 문학상 작품집 읽기를 과감하게 때려치울 수가 있었다. 다른 말로 도시적 감수성에 기댄 작품들에 흥미를 잃었다는 뜻이다.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에는 모두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충청도 아줌마’, ‘울고 넘는 박달재’, ‘물레방아 인생’은 대중가요 제목을 차용했다. ‘충청도 아줌마’는 야방, 날품팔이, 창녀 등 고향을 빼앗긴 밑바닥 인생들의 한바탕 해원 굿, ‘울고 넘는 박달재’는 연대보증 빚에 쫓겨 노부와 어린 아들을 두고 야반도주하는 장사에 매달리다 파산한 소작농, ‘물레방아 인생’은 읍내상가 번영회 회원들인 장사치들의 지리멸렬한 싸움으로 보낸 긴 하루가 살아 펄떡이는 생명력 넘치는 구어체로 그려졌다. 이 외에 수입 소고기로 인한 축산농가의 경제파탄(워낭소리), 생태마을 조성이 불러온 난개발(뭘 봐), 4대강 사업의 반생명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두물머리), 농토의 골프장화와 영어 몰입교육을 풍자한(몰입), 탁상공론의 논 농업 직불제로 안팍 곱사등이가 된 소작농의 애환(송충이는 무얼 먹고 사는가), 미친 미국 소고기 소동(부조), 유전자 조작 콩으로 개피 보는 두부가게(갈보 콩), 정보화 마을 노인네들의 인터넷 배우기 소동(웹 2.0)으로 수록된 이야기들은 압축 성장으로 인한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농촌을 배경으로 했다. 내가 바라보는 작금의 문단에서 ‘진실과 정의를 말하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라는 명제를 가장 올바르게 수행하는 작가로 나는 이시백을 꼽는다. 아무튼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고명철의 말대로 ‘맛깔스런’ 민중서사에 흠뻑 빠진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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