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우주로의 초대
지은이 : 문복주
펴낸곳 : 문학동네
묵긴 묵은 시집이다. 해설을 쓴 이의 이름 뒤에 괄호를 치고 소설가라고 직함을 적었다. 학창시절. 나는 ‘황구의 비명’과 ‘폭염’을 접하면서 한국소설 읽기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작가 천승세는 소설도 쓰고 시를 쓴 지가 한참이 되었다. 21세기 초 김포의 외진 곳에 이사와 돼지를 키우며 글을 썼다. 그 시절 나는 아직 고향 김포에서 살았으니 그 기억은 틀림없다. 그런데 해설의 내용은 시평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인이 제주도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를 쓰던 시절, 함께 붙어 지내던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두 작가는 제주도에서 인연이 닿았다. 깊은 내막은 나도 모르겠다. 출간된 지 15년이 지난 시집을 나는 어렵게 구했다. 내가 즐겨 찾는 온라인 서적은 품절이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인터넷 서적이 아닌 홈쇼핑에 접속했다. 인연이 닿았다. 시집값이나 배달비가 거기가 거기였다. 오래 묵은 시집은 겉표지의 흰 바탕 부분이 누렇게 변색되었다. 나는 함양행 고속버스에 올라 시집을 펼쳤다. ‘우주의 바다를 유영하는 과학적 상상력의 빛나는 시적 성취’라는 평가를 받은 시집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5부에 나뉘어 모두 68편이 실렸다.
안녕, 지상의 티끌들이여/광활한 어둠 너무 황홀하여/나의 껍질 버린다/내가 잠시 머물고 가는 이곳의 추억은/너무 아름다웠다/지상에서 남은 마지막 언어/영혼에 싣고/나를 쏘아올린다/토성의 아름다운 테가 내 영혼에 감긴다/안녕, 지상의 티끌들이여/나는 이제부터 우주로 존재한다(안녕, 지상의 티끌들이여. 전문 / 86쪽)
우주의 별들처럼 많고 많은 인간 군상들 가운데 시인과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는가 보다. 나의 블로그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후배가 덕유산 자락에 외딴 오두막을 짓고 칩거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섬에 들면서 두 번째 후배를 찾았을 때, 산골 외딴 집은 어엿한 이웃을 두고 있었다. 산자락 오두막을 오르는 비탈이 시작되는 공터에 황토집이 들어서 있었다. 나는 후배에게 이웃인 시인을 소개 받았다. 제주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다가, 명퇴를 하고 자연을 벗 삼으려 이곳에 삶터를 마련하였단다. 바로 문복주 시인이었다. 나는 시인을 찾아가 애써 구입한 시집에 자필서명을 받았다. 시인의 글씨체는 제주의 부드러운 오름보다 섭지코지 주상절리를 더 닮았다. 그리고 시집‘식물도 자살한다’를 더해 내게 건넸다. 시인은 현재 함양문협 회장을 맡고 있다. 새삼스레 겉표지를 여니, 시간이 한 달이나 늦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분명 4월에 덕유산자락을 찾았는데, 사인의 날짜는 3월이었다.
○ ○ ○ 아우에게
서해에서 팔팔한 바닷고기 하나가 왔다. 죽지 않고 싱싱한 모습을 보며 계속 그렇게 살라한다.
2012. 3. 13. 문복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