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련사를 찾으며 속계에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해탈을 상징하는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중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밝혔다. 전등사도 흔히 우리가 가람을 찾으면서 통과의례로 지나치는 삼문(三門)이 없다. 하지만 다른 절에서 맞보기 어려운 삼랑성의 홍예문을 통과하는 색다른, 강화 전등사만이 걸어온 역사성을 실감할 수 있다. 삼랑성 동문에서 양헌수승전비를 지나 전등사 대조루로 향하는 길은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바람결에 실린 진한 솔내음을 맡을 수 있다. 전등사의 창건시기로 두 가지 학설이 대립한다. 먼저 전등사는 소수림왕 2년(372) 아도화상이 신라의 일선군에 불교를 전파하기 전에 당시 백제땅이었던 이곳에 당시의 절이었던 진종사(眞宗寺)를 창건했다. 그때 아도화상은 평양에서 이곳으로 직접 내려와 신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전등사지의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화상이 진종사를 창건했다는 설을, 백제에 불교가 전파된 시기는 384년이므로 이치에 닿지않다고 했다. 이는 고찰임을 강조하여 사격을 높이려는 무리한 창건기사라 했다. 과문한 답사객은 역사적 실증자료가 부족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중천을 넘어선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가와 솔내묻은 바람결에 땀을 들이며 걸음을 늦추는데 그녀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녀는 일행과 주말을 맞아 전등사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어쩌다 마주치던 그녀는 작금의 부지기수인 몰개성적 서구형 미인에 대한 반감으로 전통적 한국 미인을 만나는 기쁨을 주었다. 그녀를 보고 나는 왜 한국 미인을 떠 올렸을까! 그녀는 조선후기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를 닮았다. 둥그런 얼굴과 시원스런 이마, 가느다란 눈썹과 야무진 입술 그리고 또랑또랑한 눈망울. 다만 그림속의 미인은 단정히 빗은 머리에 가체머리를 얹은 반면 현실의 살아있는 미인은 가지런히 빗은 머리를 뒤로 묶었을 뿐이다. 그림속의 미인은 항상 같은 모습이지만 현실의 미인은 생동한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찰나지간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전등사는 유서깊은 고찰이라 경내 여기저기 은행나무, 느티나무 노거수가 답사객의 눈길을 끌었다. 언덕받이 아래 삼랑성 남문인 종해루(宗海樓) 지붕이 거목 줄기 사이로 언뜻 보이면 경내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전각이 대조루(對潮樓)다. 지방문화재 자료 제13호인 대조루는 편액이 일러주는 것처럼 에전에는 서해의 조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고 한다. 요즘 어느 절에 가도 있게 마련인 기념품가게가 대조루에 마련되었다. 안벽에 목은 이색의 시 루상운(樓上韻)이 걸렸다.
나막신 신고 산에 오르니 흥은 절로 맑고
전등사 노승은 나의 행차 인도하네
창 밖의 먼산은 하늘 끝에 벌였고
누 밑에 부는 바람 물결치고 일어나네
세월속의 역사는 오태사가 까마득한데
구름과 연기는 삼랑성에 아득하구나
정화궁주의 원당을 뉘라서 고쳐 세우리
벽기에 쌓인 먼지 내마음 상하게 하네
누안에는 왕실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의 현판, 장사각, 추향당 등의 편액이 걸려있어 전등사가 역사의 물결에서 차지한 비중을 엿볼 수 있다.
대조루에서 바라보면 대웅보전, 향로각, 약사전, 명부전이 4형제처럼 어깨를 마주댔다. 보물 제178호인 대웅보전은 참으로 볼거리가 많은 전각이다. 막돌로 기단을 높게 만들고 초석을 놓았는데 원흘림기둥이 안정감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은 처마끝이 들려 날아오르려는 학을 연상시켰다. 법당에는 석가, 약사, 미타 삼존불을 모셨는데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은 용, 봉황, 구름으로 천상의 모습을 나타내 화려하기 그지없다. 천장은 화려하게 채색된 우물천장으로 연꽃, 모란, 당초가 양각되었다. 한편 동문을 지나면서 보았던 양헌수승전비와 연관있는 역사적 흔적이 대웅보전에 남아있다. 프랑스군과의 정족산성 전투에서 결사의 각오를 다지려는 양헌수부대원들이 부처님께 무운을 빌기 위하여 기둥과 벽면에 이름을 써놓은 것이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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