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江都를 가다

절을 나와 갯벌로 향하다

대빈창 2012. 9. 7. 03:55

 

전각 지붕을 올려보면 봉우리 모양의 수막새 고정용 백자 장식이 제대로 갖추어져 여느 절에서 보기힘든 흑백의 조화를 보여준다. 추녀 네 귀퉁이에 나녀상이 처마를 받들고 있는데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도편수 동량이 절의 역사로 고향에 다녀오지 못하기를 여러해. 객고의 회포를 풀지 못하던차 절아래 주막집의 아름다운 여자가 유혹을 했다. 도편수는 그녀와 앞날을 기약하여 품삯을 맡겼으나 여자는 돈을 갖고 도망을 쳤다. 이에 배신감으로 분노가 치민 도편수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하여 전등사 대웅보전의 무거운 추녀를 받들게 만들었다. 이 전설에 숨어있는 내력을 최완수 실장은 이렇게 유추했다. 고려말 충렬왕과 원나라의 제국공주는 조양환을 복용하고 음사를 즐겼는데 이를 저주한 고려 민심의 이반이 전설로 윤색되어 전해진 것이다.

보물 제179호인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다포집 형식을 따랐다. 팔작지붕 처마에 막새기와를 사용했고, 본존은 고려말 양식을 보이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셨다. 약사여래의 상징으로 결가부좌한 무릎위 수인은 보주를 쥐었다. 원래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지만 임금께 진상하는 제반 약재를 올리기 전에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였다. 이것은 강화도에 각종 약재가 많이 생산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비롯한 시왕, 귀왕, 판관 등 29구의 목조상을 모셨다. 명부전을 오르는 계단 난간에 근래 조각한 두꺼비가 웅크렸는데 슬며시 웃음을 입가에 달게 만들었다. 어미 두꺼비가 새끼를 등에 업었으니, 다른 놈은 필경 아비 임에 틀림없다.

전등사는 종각이 두 군데다. 대조루옆 종각과 적묵당앞 종각이다. 두 종각 사이에 조그마한 인공연못이 있는데 중앙에 향나무가 심겨진 정방형 섬을 조성했다. 물빛은 녹조류가 점령했는 지 탁하기 그지없다. 답사객의 시선을 끄는 종은 대조루옆 종각의 보물 제393호 전등사 범종이다. 이 종은 한국종이 아닌 중국 송나라의 동종이다. 명문 내용으로 북송 철종 4년(1097)에 제작한 백암산 숭명사가 고향인 것을 알 수 있다. 종몸의 위와 아래에 8개의 사각형 문양을 새겼고, 4개의 당좌가 있으며 용두 주위에 연꽃을 새겼지만 음통이 없어 한국종이 아니다. 국내에 남아있는 중국종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이 종은 해방후 부평 군기창 뒷마당에 굴러다니던 임자없는 종을 주지스님이 옮겨왔다. 일제 군국주의가 극랄한 문화재 약탈로 밀반출하려다 우연히 전등사가 소장하게 된 기구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전등사를 벗어나면서 주위를 훑어보니 공터마다 승용차가 주차되었다. 착찹했다. 삼랑성 동문 턱밑에 주차한 차를 돌려 고갯길을 내려오는데 승용차 한대가 폭좁은 고랑에 빠져 오도가질 못했다. 다행히 내차에 견인용 와이어줄이 있었다. 차를 꺼내니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입가에 ‘고맙습니다’를 되뇌더니 급히 오던길을 되돌려 나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 것인가.

나는 전등사를 나와 장흥저수지를 지나 해안도로로 접어 들었다. 강화도 남동해안 즉 장흥리에서 초지리에 걸쳐있는 드넓은 갯벌로 향했다. 우리나라 갯벌의 총면적은 국토의 2.4%로 2,393㎢로서 서남해안에 집중적으로 발달했는데 세계 5대 갯벌중 하나다. 그중 강화도의 90㎢ 갯벌은 세계적인 규모와 질을 자랑한다. 선진국들은 갯벌의 중요성을 깨닫고 개발방지를 넘어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 독일은 80년대 중반부터 모든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간척의 나라 네덜란드는 오히려 제방을 헐어 갯벌로 복원시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강화도의 갯벌은 깊이가 수미터나 되며 함수량이 높아 걸으면 허벅지까지 빠지는 펄함량이 90%이상인 펄갯벌이다.

왜 강화도에 갯벌이 발달했을까. 나는 양사면 철산리를 지나면서 예성강과 임진강 그리고 한강이 바다에 몸을 푸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강화도의 갯벌은 대부분 한강의 상류에서 하구를 통해 유입, 운반된 것이다. 갯벌은 다양한 기능으로 작금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 자연 정화조로서 하천수가 바닷물과 직접 만나는 것을 차단하는 여과기 기능으로서 영양염류의 과잉이나 오염물질을 흡수한다. 이 정화기능이 갯벌의 경제적 가치중 67%를 차지한다. 둘, 자연재해와 기후조절의 기능으로서 홍수등의 급류를 차단하여 하안이나 해안침식을 막는 완충지로서 홍수의 피해를 최소화시킨다. 한편 갯벌의 식생은 국지적으로 대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셋, 생태적 기능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 중 1/3이 습지생태계에서 발견된다. 또한 갯벌은 회유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기능을 들 수 있다. 산업화되어 콘크리트로 밀폐된 도시생활에 억눌린 현대인의 마음을 포근하고 풍요롭게 순화시키는 문화적 혜택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