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콩밭에서
지은이 : 박형진
펴낸곳 : 보리
나의 책장에는 묵은 시집이 몇 권 있다. 그중 한권이 박형진의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다. 새삼 시집을 뒤적거린다. ‘94년도에 출간되었다. 가격이 착하다. 3,000원이다. 출판사는 창작과비평사다. 시인의 산문집이 시집과 어깨를 겯고 있다.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로 2003년에 디새집에서 출간했다. 그리고 나는 따끈따끈한 시집 ’콩밭에서‘를 펼쳤다. 그러고 보니 10년 주기로 농부시인의 글을 손에 잡았다. 산문집 뒷표지 표사는 변산공동체 대표 윤구병이다. 하지만 농부철학자 윤구병은 몇 년 전 변산에서 서울로 터를 옮겼다. 변산공동체와 나는 인연이 닿을 뻔 했다. 90년대 중반. 구로 공장에서 떨려나, 하릴없이 백수로 지낼 때 윤구병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변산에 공동체를 세우면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때 나는 혁명계급 ’프롤레타리아‘로 살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똘똘 뭉친 학출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땅으로 돌아왔다. 에둘러오기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만약 그때 아는이의 소개로 내가 변산에 내려갔다면 시인을 분명 만났을 것이다. 알다시피 시인과 농부철학자의 인연은 아주 돈독하다. 농부시인은 푸짐, 꽃님, 이루, 보리 3녀1남을 변산공동체의 대안학교에 보냈다. 지금 큰딸 ’푸짐‘이는 윤구병이 운영하는 ’민족의학협회‘를 다니고, 둘째딸 ’꽃님‘이는 보리출판사 직원이다. 이 시집은 보리에서 출간되었다. 아버지의 시집을 딸이 펴낸 것이다. 두 딸들은 명절이면 애비를 보러 고향인 변산의 한적한 어촌마을 모항에 내려올 것이다. 시편 ’옥탑방의 딸에게‘는 서울 생활하는 두 딸이 사는 옥탑방에 갔다가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시인은 잠들지 못하고 새벽 지하철에서 쓴 시다.
요즘 나는 시와 소설을 잡는 취향이 변했다. 농민시와 농촌소설을 잡으면서도 기준이 생겼다. 시인과 작가가 쓴 시와 소설이 아니라, 농민이 쓴 글을 잡는다. 시는 서정홍, 박형진, 정낙추, 이중기 등. 소설은 이시백과 최용탁이다. 시집에는 보리, 감자, 양파, 고추, 상추, 꽃밭, 콩나물시루 등 온통 흙냄새가 고스란히 담겼다. 시인은 중학교 1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이다. 그리고 평생을 농부로 살았다. 대한민국의 농부 삶이 결코 눅눅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고달픈 농부의 삶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평생 땅을 파먹고 살아 왔지만 어인 판속인지 살림은 늘지 않고 빚만 늘어간다. 남들처럼 쓰지 않고 먹지 않고 땀 흘려 일해도 해마다 빚이 느니 사람 미칠 지경이다. 빚만 없다면 하늘에라도 오를 심정일 것 같다. 나에게 욕망이란 상향조정될 필요도 없이, 제발 돈의 폭력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 뿐이다.’ 농부시인의 삶은 ‘시 짓기가 농사짓기’로 봄동 같은 억척스런 의지로 버텨왔을 것이다.
못난 놈 못난 놈아/이 봄동을 보아라/일찍이 포기 차서 단단한 배추는/스스로/부드러운 속을 감싸고 있는 그것 때문에/역설적이게도 겨울 찬바람에/얼고 썩지만
거름을 못 얻어먹고 늦되어/이파리들을 다 오므리지도 못하는 봄동은/아무리 얼어도 썩지 않고/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파리가/얼음장처럼 두꺼워지지 않더냐
그것은 이미/꽃이라 부르지 않아도 꽃이었던 것을/봄은 알기에 겨울을 밀어낸다(대한에 서서/전문,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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