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신을 위한 변론

대빈창 2012. 12. 14. 03:23

 

 

책이름 : 신을 위한 변론

지은이 : 카렌 암스트롱

옮긴이 : 정준형

펴낸곳 : 웅진지식하우스

 

나는 올 여름에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왔다. 새로 쓴 봉분에 입힌 잔디가 흙냄새를 맞고 푸른 기운을 띠었다. 고 김근태의 묘였다. 고인은 작년 세모에 고문후유증으로 앓다가 64세로 눈을 감았다. ‘민주주의자’ 김근태는 나에게 민청련 의장으로 뇌리 한 구석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1985년 고인은 안기부에 끌려가 20여일 간 생사를 오고가는 고문을 당했다. 칠성판에 눕혀진 채 물고문을 당한 악명 높은 그 사건의 가해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이었다. 고인이 눈을 감았을 때 이근안은 목사였다. 고문기술자 목사는 자신의 고문 행위를 찬양하며 자신은 고문기술자가 아닌 신문(訊問)기술자로 신문은 하나의 예술이며 지난 시절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서슴없이 떠들어댔다. 이근안은 신에게 회개하고 자신의 행동을 애국으로 치장하였다. 하긴 이 땅에서 한미 FTA 찬성,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무상급식 반대,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애국이다. 고문기술자에게 안수라는 ‘값싼 선물’을 한 기독교 교단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정의와 진실, 역사의식과 윤리성이 부재한 한국교회이기에 이러한 성직매수가 가능하다. 정말 갈 데까지 간 한국교회의 참혹한 몰골이었다.

이 땅은 교회가 중국집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열성적인 신자들로 들끊는 한국교회는 공격적인 선교 방식으로 말이 많다. 바미얀 대불을 로켓으로 폭파한 아프가니스탄에 2007년 7월 샘물교회 신도들이 선교활동을 나갔다. 하지만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되었고, 일부 피랍자는 살해됐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봉은사 앞마당에서 땅밟기 기도를 드리는 행태로 ‘개독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하긴 이 땅에서는 오히려 속세 사람들이 종교인을 걱정한다. 불교나 기독교나 마찬가지다. 한국 종교는 교회나 사찰이 대형화, 세력화되면서 큰 조직을 이끌다보니 신도들의 탐욕에 기대었고, 소금과 목탁은커녕 자본주의의 시녀이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종교는 거룩함으로 위장하고 기업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사업체가 되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내 책장에 앞의 책과 부피가 맞먹는 한 권의 종교서적이 최근에 자리 잡았다. 바로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이다. 나는 보름에 걸쳐서 뇌세포를 뜨겁게 달구는 쉽지 않은 내용의 이 책을 잡았다. 인간 이성을 신봉하는 진화생물학자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지은이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라고 비판한다. 이 전투적 무신론자는 엉뚱한 상대를 공격해 이기고서 승리의 찬가를 불렀다는 것이다. 즉 도킨스와 히친스가 파괴한 종교는 인류가 오랜 시간 간직해 온 종교가 아니다. 이 책은 동서고금의 철학자와 종교가들의 사유와 체험을 소개한다. 비교종교학자인 지은이는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서양종교와 동양종교까지 세계 종교사, 사상사를 섭렵하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부정하려는 노력과 갈망의 부질없음을 보여 주었다.

지은이는 종교의 주목적은 영혼을 가꾸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 경험의 절반을 차지하던 뮈토스(신비)의 영역이 어떻게 로고스(이성)에 의해 파괴되는지를 꼼꼼하게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극단적인 쌍생아인 종교적 근본주의자와 전투적 무신론자들이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 1976)이 말했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건을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십자가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삶의 유한성, 고통, 슬픔, 절망, 삶의 불공평함에 분노를 느끼지만 종교에 귀의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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