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지은이 : 최완수
펴낸곳 : 대원사
교조 석가모니(서기전 566 ~ 서기전 486년) 열반이후 600년 동안 소승불교 시대에는 신격화가 이루어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의 모습인 불상은 없고 상징표현만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불멸후 600년이 지나면서 쿠샨제국의 중심지인 간다라에서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이를 이념기반으로 간다라와 마투라 양대 지역에서 불상이 출현한다. 불보살의 권능에 의지하려는 타력신앙의 발전으로 인격신이었다. 간다라 지방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인격신상을 만든 그리스문화가 300여 년간 뿌리내린 지역이었다. 중국 후한의 명제(58 ~ 75년)에 불경과 불상이 처음으로 중국에 전해진다. 대승불교가 중국에 전해지며 불상은 예배의 주대상이 되었다. 중국에 전해진 초기 불상은 간다라 양식이었으나 200여년이 흐르면서 불교와 마찬가지로 불상도 중국화된다. 물은 차면 넘치게 마련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전진 황제 부견이 불상과 불경을 보낸다. 중국화된 간다라 양식으로 추정된다. 이 땅의 초창기 불상 중 삼국시대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에 대한 불상 양식 고찰로 이 책은 마무리를 짖는다.
책은 불상이 없었던 초기 불교시대와 불상이 나타난 5세기 이후 간다라 시대의 인도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불교 미술을 아우른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 인도. 2부 중국. 3부 한국으로 나뉘어 불교의 발생과 전파과정 및 각 나라의 불상 변천과정을 다루었다. 어느 절에 가도 불상은 모셔졌다. 그렇다면 불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은이는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원찰에 기도드리러 갔다가 처음 불상을 만났다. 지은이의 어릴적 호기심이 40여년 만의 연구 끝에 이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책에 실린 글들을 나는 15년전에 보았다. 그 시절 나는 3대관음도량 중의 하나인 보문사가 자리 잡은 석모도에 있었다. 머리말에서 지은이가 자세하게 밝혔듯이 이 글들은 신동아에 1999년 7월부터 30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그때 동료가 월간 신동아를 구독했다. 잡지가 도착하면 나는 주인보다 먼저 포장지를 뜯고 적지 않은 분량을 바로 복사해서 글을 읽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12월 나는 석모도를 벗어났다. 그 시절 나는 답사의 즐거움에 깊이 몰입되어 저자의 책을 익히 손에 쥐고 있었다. 명찰순례 전질과 진경시대 1·2권이다.
년 중 두서너 번 문화유적 답사를 떠났던 나는 절마다 대웅전 마당에서 나그네를 맞아주던 석탑의 시대적 변천양식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은 갖추었다. 하지만 전각마다 들어서있는 불상들의 이념 배경이나 역사 사실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불상의 모습은 ‘그 시대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얼굴’을 조성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다. 2002년 불상의 원류를 찾는 시리즈의 1권이 출간되었다. 나는 즉시 손에 넣었으나 펼치지는 않았다. 책이 완간되길 기다렸다. 2007년 2, 3권이 연속 출판되었다. 하지만 나는 답사에 시들해졌고, 낙도의 불편한 삶을 즐기는 ‘얼치기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생태주의적 실천의 단순소박한 삶과 문화유산 답사라는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행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 책을 손에 넣은 지 10년 만에, 처음 이 글을 접한 석모도 보문사가 바다 건너 마주 보이는 서해의 작은 외딴섬에서 나는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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