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B급 좌파 세번째 이야기

대빈창 2012. 12. 24. 05:20

 

 

 

책이름 : B급 좌파 세번째 이야기

지은이 : 김규항

펴낸곳 : 리더스하우스

 

책을 손에 넣은 지 2년이 되었다. 책을 뽑아 들기가 멈칫거렸다. 부피에 쫄았다. 500쪽이 넘는 책술은 아주 두터웠다. 그런데 막상 집어 들자마자 책장은 술술 잘도 넘어갔다. 짧은 글과 일기가 엮여진 이 책은 B급 좌파를 자처하는 지은이의 세 번째 칼럼집이다. 첫 번째는 2001년에 출간된 ‘B급 좌파’다. 그리고 두 번째는 2005년의 ‘나는 왜 불온한가’이다. 여기서 ‘B급 좌파’는 80년대 이 땅의 진보세력의 주축이었던 좌파가 구소련의 해체와 동구권 몰락 이후 급격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에 휩쓸려, 시대착오적이라고 조롱받는 세상에 대한 저자의 현실인식이 담겨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5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이 땅의 시대상황에 대한 정직한 좌파 지식인의 시선을 담았다.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04년 3,000명의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됐다. 평택 대추리로 강제 이전하는 미군부대로 땅을 잃은 농민들이 600일 넘게 긴 투쟁을 했다. 한미 FTA 협상에 반대 시위하던 전용철과 홍덕표 2명의 농민이 강제 진압으로 숨졌다. 2006년 8월 포스코 점거 농성에서 하중근 열사가 공권력의 폭력에 목숨을 잃었다. 2007년 4월 2일 한미FTA가 타결되었고, 허세욱 열사가 분신했다. 12월 20일 MB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8년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 촛불투쟁이 100일 넘게 지속되었다. 2009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용산에서 철거민 5명이 불에 타 죽었다.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했다.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87년 국민대항쟁. 그때 나는 대학생으로 매캐한 최루가스가 뒤덮은 도심에서 여름 한철을 보냈다. 한국사회에 절차적 민주화가 완성된 지 25년이 되었다. 그런데 민중들의 삶은 갈수록 고단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땅의 민주화는 다름 아닌 자본화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이처럼 미궁에 빠진 것은 민주화가 실은 자본화(신자유주의화) 였다는 것,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국가권력이 자본을 거느리는(박정희가 이병철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에서 자본이 국가권력을 거느리는(이건희가 노무현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로 변했다.(132쪽) 그러기에 개혁 세력은 우파로서 진보를 가장한 신자유주의 개혁일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휘말린 이 땅은 자본의 경쟁에 아이들까지 밀어 넣는 미친 사회로 전락했다. 박정희 이후 50년동안 경제만 강조되어 온 돈벌레, 경제동물들의 천박한 한국사회는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목표로 삼으며, 소박함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충만을 우습게 여기는 인간으로 키우는 것(246쪽)’이 교육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이미 파탄 났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880만 명으로 58%를 차지한다.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49%로 노동조합 조직률은 고작 3%가 고작이다. 가히 적수가 없는 자본의 천국이다.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한 소녀의 말이 가슴에 화인을 남긴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상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대상은 계급적 본질을 흐리며 민중에 대한 착취를 가속화하는 자본이다.

 

p.s 18대 대선이 끝났다. 홍세화 말로 표현하면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 결과다. 나는 피부로 절감했다. 맹목적인 '박정희에 대한 향수'의 무서운 몰입을. 참담하다. 친일부역세력에게 민족해방세력이 청산당한 역사를 가진 이 땅의 트라우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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