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개념어 사전
지은이 : 남경태
펴낸곳 : 들녘
마지막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사전답게 양장본으로 꾸몄으면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을 바래서는 안 되었다. 이 책은 2006년에 초판이 나왔다. 나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반값으로 손에 넣었다. 그리고 문득 개정판이 나온 것을 알고 뒤늦게 책갈피를 들추었다. 이 책은 저자가 철학, 역사, 과학, 시사 분야의 개념어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푼 해설서다. 항목은 ‘가상현실’부터 ‘환경’까지 153개로 450여 쪽에 달한다. 여러 분야를 섭렵한 저자의 박식이 놀라웠다. 한마디로 내공이 보통을 넘었다. 저자는 80년대 ‘제국주의론’, ‘공산당 선언’,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등 사회과학 원전을 남상일이라는 필명으로 번역했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가. 생소한 이름이다.
- 1980년대 중반에 우리 사회의 진보적 학술계와 사회운동권에서는 한국 사회라는 구체적 사회체에 사회구성체의 개념을 적용해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192쪽) - ’사회구성체‘ 개념에 대한 설명 중 한 단락이다. 그렇다. 내가 이 책을 손에 넣은 시원은 ’사구체‘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절 나는 '개념 없는 사람'이었다. 흔한 말로 아무 생각없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80년대 중반, 나는 문학을 핑계 삼아 낭만적 객기로 술독에 빠져 살았다. 시집 한 권 읽지 않고, 습작으로 단편소설 한편 긁적이지 않고도 입은 연신 '문학’을 달고 살았다. 무책임한 젊음의 탕진이었다. 어느 날 술김에 서점에서 집어 든 책이 하필이면 무크지 ‘녹두꽃’이었다. 몇 쪽 읽지 못하고 진도가 막혔다. 사회과학 용어 때문이었다. 나는 개념조차 없었다. ‘사구체’란 콩팥에서 오줌을 만드는 기관이지 않은가. 그런데 ‘사구체’가 왜 여기에. ‘사구체’는 사회구성체의 줄임말이었다. 그 시절 운동권의 조어 방식이었다. 나는 오기가 발동했다. 동녘에서 출간된 ‘철학사전’을 손에 넣었다. 나는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80년대는 이념의 시대였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독서란 내 머리가 남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다.’라고. 나의 독서 연대기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학과 공장 노동자 시절의 사회과학 원전, 고향에 낙향한 김포 시절의 인문학 서적, 그리고 서해의 외딴 작은 섬의 생태와 농업 실용서. 한 벽면을 차지한 책장에 빈틈이 없다. 마음 속에서 제쳐 두었던 책 수십 권을 아궁이가 있는 봉당으로 옮겼다. 불쏘시개다. ‘사구체’가 깨우쳐 준 무지가 이 정도나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였다. 올해 안으로 다른 벽면에 새 책장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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