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자발적 가난

대빈창 2013. 6. 28. 09:39

 

 

책이름 : 자발적 가난

지은이 : E.F 슈마허외

엮은이 : 골디언 밴던부뤼크

옮긴이 : 이덕임

펴낸곳 : 그물코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의 부편집장 카를 폴라니는 당시 엄청난 금액의 월급을 받았다. 폐차장과 쓰레기 처리장을 지나는 카를의 낡은 5층 아파트로 크리스마스 저녁 만찬에 피터 드러커는 초대된다. 폴라니의 가족은 헝가리 남작의 딸인 늙은 장모, 아내와 8살의 어린 딸 4가족이었다. 여기서 드러커는 인생 최악의 식사를 하게 된다. 제대로 삶아지지도 않은 감자가 전부였다. 이 가족의 생활비는 보통사람이 아무리 절약해도 살아갈 수 없는, 폴라니의 월급의 1만분의 1도 안되었다. 참을 수 없었던 피터의 의문에 찬 물음에 가족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자기를 위해 쓰다니요. 지금 헝가리에는 피난민이 가득합니다. 카를의 월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우리 가족이 필요한 것은 별도로 치는 것이 존중하는 인간에 대한 당연한 도리입니다.”

표제를 보고 떠올린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주창했던 카를 폴라니와 그 가족의 ‘자발적 가난’이었다. 이 책은 동서고금의 현인(賢人)들의 잠언·격언·경구를 모은 아포리즘 모음집이다. ‘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더 큰 행복’에 대한 주옥같은 글귀 475개가 묶였다.

 

E.F 슈마허/ 이반 일리치/ 장 자크 루소/ 헨리 데이비드 소로/ 톨스토이/ 라이너 마리라 릴케/ 마하트마 간디/ 윌리엄 브레이크/ 노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타고르/ 세네카/ 맹자/ 올더스 헉슬리/ 공자/ 앨빈 토플러/ 몽테뉴/ 쇼펜하우어/ 토머스 홉스/ 아우구스티누스/ 애덤 스미스/ 셰익스피어/ 러스킨/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에피쿠로스/ 프랜시스 베이컨/ 파스칼/ 버트런드 러셀/ 괴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널드 토인비/ 월리엄 워즈워스/ 바쇼/ 헤르만 헤세/ 존 로크/ 아리스토텔레스/ 베르길리우스/ 칼 마르크스/ 토마스 모어/ 토머스 칼라일/ 디오게네스/ 임어당/ 헬렌 니어링/ 웬델 베리 등.

 

대표 저자 E .F 슈마허는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역설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잘 알려졌다. 옮긴이 이덕임은 지리산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표지 사진이 숭고하게 다가왔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에 농부가 씨앗을 파종하고 있다. 출판사 그물코가 자리 잡은 이 땅의 가장 훌륭한 농촌공동체를 일군 충남 홍성 홍동의 장일섭 농부가 밀 씨앗을 뿌리는 모습이다.

명품에 미처, 짝퉁이라도 흉내를 내고픈 들뜬 과시욕으로 부글부글 끊고, 치장한 겉치레로 타인을 깔보는 천박한 이 땅. 졸업 후 취업길이 막혀 휴학을 하고 알바를 하며 스펙을 쌓는 20대에게 재테크에 미치라고 악다구니치는 사회. ‘부자 되세요’를 넘어 ‘대박 나세요’라고 새해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 낯 뜨거운 줄 모르는 10대 90으로 양극화된 대한민국. 탐욕적 이기주의를 버리고 자발적 가난의 풍요를 추구하라는 현자(賢者)들의 잠언이 이 땅에서 제대로 들릴 수 있을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보수로 받은 수표를 책갈피로 사용했다고 한다. 웃기지 마라.  헛소리 하지 말라.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매일매일 온 몸으로 외치는 악다구니로 소란스럽다. 나는 마하트마 간디의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책을 덮었다.

 

“지구는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은 자원을 제공하지만, 탐욕을 만족시킬 만큼 자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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