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소문들

대빈창 2013. 6. 24. 07:44

 

 

책이름 : 소문들

지은이 : 권혁웅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파라과이 사막의 풍선개구리, 슬로베니아의 동굴도롱뇽, 심해의 바늘방석아귀·나무수염아귀, 나미브 사막의 웰위치아 미라빌리스, 아타카마 사막의 틸란드시아 라티폴리아, 인더스강 돌고래, 갠지스강 아시아큰연갑자라, 인디애나주 단풍나무의 17년 매미, 가시복어, 개복치, 시모투아 엑시구아, 먹장어, 텍사스뿔도마뱀, 열수구의 폼페이벌레, 바이칼호의 민물바다표범 네르파·골로미양카. 야생동물구역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작시에 등장하는 기이하고 희한한 생물들이다. 이외에도 시편들마다 바오바브나무, 여우원숭이, 텐렉, 코끼리, 두꺼비, 낙타, 곰, 오리, 개미핥기, 제비, 악어, 늑대, 고양이, 사슴, 딱따구리, 노래기, 고릴라, 오랑우탄 등 수많은 생물들이 도감처럼 독자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68편의 시편과 문학평론가 조강석의 해설 ‘생활 세계와 기호계의 시적 동기화’가 끝머리에 붙었다. 소문들 - 6편, 오늘의 운세 - 2편, 가정요리대백과 - 3편, 야생동물보호구역 - 10편, 나무인간 - 2편, 드라마 - 6편, 강변 여인숙 - 2편, 노모 - 2편, 멜랑콜리아 - 3편, 기록보관소 - 4편. 시집에 실린 연작시들이다. 시집의 부피가 두껍다. 그것은 시편들이 대부분 길기 때문이다. 네 번째 시집을 선보인 시인은 독자에게 오히려 평론가로 얼굴이 더 알려졌다. 그것은 ‘미래파’ 논쟁에서 기인한다. 2005년 시인은 젊고 파격적인 낯선 시풍으로 무장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을 ‘미래파’라 이름 붙이고, 논쟁을 이끌었다. 젊은 시인들은 타인과의 소통보다 개인적 고통을 긴 시들로 쏟아냈는데, 평단은 ‘시의 품격과 미래를 파괴하는 기괴한 개인 방언’이라고 쓴소리를 뱉었다.

 

7. 용역(龍屴)

용사에서 발흥했으며 우면산의 검경(劍京), 발치산의 공산(恐汕)과 함께 3대 조폭이었으나 동이와 오환의 대살육 때에 - 이를 육이오(戮夷烏)라 부른다 - 검경과 연합, 공산을 궤멸하여 장안을 장악했다. 정직한 자를 잡아가고 가난한 자를 태워 죽이며 속이는 자에게 쌀을 주고 부유한 자의 곳간을 지켜, 그 악명이 자자하다 최루탄지공, 개발이익조, 아수라권, 물대포신장, 소요진압진 등의 연합 무공을 쓴다

 

‘소문들 - 유파(流派) 편’ 中에서. 극악스러울 정도로 모진 이 땅의 현대사가 압축적으로 묘사된 시편이다. 2009년 1월의 용산 참사를 패러디했다. 여기서 용역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학살한 군홧발과 토건족 정권의 만행을 그렸다. MB정권 초기 자행된 국가폭력 ‘용산 참사’는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사가 터진 지 4년 6개월이 흘렀다. 철거된 건물터는 주차장이 되었고, 철거 구역은 갈대와 잡초만 무성하다. 철거민들은 차가운 감옥에서 네 번의 겨울을 났고, 과잉진압에 대한 책임자는 없다. 이 땅은 성찰이 없다. 여전히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의 무산으로 허공에 날린 몇 조원에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줄소송을 벼른다. 돈벌레들이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도깨비처럼 권력 방망이를 휘두른다.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린 이 땅은 돈 놀음이라는 허깨비 춤에 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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