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한국의 전통생태학
엮은이 : 이도원
펴낸곳 : 사이언스북스
현대인들은 무엇이든 ’만드는 기술'에는 뛰어나지만, 쓰레기를 줄이거나 ’없애는‘ 기술에는 속수무책이다. 기껏해야 땅에 묻거나 태우는 정도에서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먹고 싸는 일도 마찬가지다. 먹는 일에는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지만, 자기들이 싼 배설물을 처리하는 데에는 ’젬병‘이다. 기껏해야 물에 섞어서 강이나 바다에 버리는 것이 고작이다.(613쪽)
바야흐로 인류는 생태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땅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아무리 벽창호라도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과 지율스님의 단식, 새만금 공사와 수경스님, 문규현 신부의 삼보일배. 눈물겨운 할배·할메들의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에 귀를 막거나 눈을 감아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책은 생태계의 붕괴로 인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파멸로 치닫는 산업문명의 근본적인 원인을 두 가지 사유체계에서 찾았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착각하고 먹이사슬 논리에 매몰된 인간중심주의와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과신한 나머지 전통문화의 슬기를 돌아보지 않고 이를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과학주의적 사유체계(206쪽)’다.
백상학술문화상 제45회 학술부문 수상작인 이 책은 논문 모음집으로 책술이 두껍다. 선조들의 삶 속에서 생태 지혜를 찾는 21개의 글이 3부에 나뉘어 실렸다. 1부 ‘우리 전통 생태사상’은 전통마을 경관, 풍수, 백두대간, 마을 공유지, 굿, 시조, 전통 회화에 담긴 자연친화적 정신을 읽어내고, 2부 ‘우리의 옛 환경 읽기’는 꽃가루와 고목재를 통한 고대 생태환경의 복원과 대나무 경관, 지리산 전통농법, 숲 문화의 생태와 마을 숲,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53점과 안도 히로시게의 명소강호배경 119점의 회화에 나타난 당대 한양과 에도의 생태를 비교 분석했다. 3부 ‘대안 생태공간으로서의 전통마을’은 외암, 낙안읍성, 양동, 하회마을의 전통적 생태 지혜와 고산 윤선도의 금쇄동, 문소동, 수정동, 부용동의 원림 그리고 선암사의 뒷깐 등 전통사찰의 해우소를 통해 생태적 삶의 실천적 의미를 소개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개조하거나 정복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하늘·땅·바위·나무 등을 섬기었다. 특히 풍수는 자연 환경에 대한 태도나 환경 친화적인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귀동냥한 풍수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강화도의 양도와 화도를 잇는 드넓은 들녘의 이름이 가릉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도는 예전 고가도(古家島)라는 하나의 섬이었다. 려말 간척사업으로 가능포 뚝이 축조되면서 화도는 강화도와 한 몸이 되었다. 마니산 정상을 바라보며 벌판을 가로 질러 만나는 화도(華道)의 첫 마을이 ‘고창촌(串唱村)’이다. 옛날에는 작은 섬으로 풍어제를 올렸는데 그 배굿의 이름이 ‘곶창굿’이라는데서 유래했다. 지금의 마을 고창촌이 터 잡은 ‘작은 섬’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자라나 거북이였다. 가릉포 뚝이 축조되기 전 우리 선조들은 거북이가 바다로 막 들어가는 형국인 섬에서 굿을 하며 풍어를 기원했다. 바다가 메워지고, 일제강점기 신작로를 내면서 도로가 거북이 목 위로 났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길을 딴 데로 옮겨야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거북이 목을 잘라 우리 마을에서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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