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완연한 봄입니다. 사철나무의 두터운 푸른 잎은 더욱 윤기가 흐릅니다. 명자나무는 자잘하고 빼곡한 푸른 잎에 꽃이 점점이 빨갛게 수를 놓았습니다. 게으른 감나무가 이제 새순을 튀웁니다. 마른 감나무 가지에 참새 한 마리가 앉았습니다. 요란스럽게 지저귀던 네다섯 마리의 참새는 재빨리 밭 울타리 개나리 덩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의 요즘 아침은 참새들의 짹! 짹! 요란하게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왔습니다. 명자나무꽃이 땅에 드리운 마른 풀섶을 길고양이가 조심스레 뒤적입니다. 참새 둥우리를 찾습니다. 하지만 참새 어미는 슬라브에 잇댄 조립식 판넬에 집을 마련했습니다. 새끼 참새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합니다.
생강나무는 노란꽃이 지고 두툼한 새순을 가지마다 매달았습니다. 찔레와 초피나무는 자잘한 새잎의 연한 색이 보기 좋습니다. 바닥은 달래 양탄자를 깔아 놓았습니다. 아기가 다섯손가락을 활짝 벌리듯이 으름이 덩굴마다 다닥다닥 잎을 달았습니다. 산복숭아의 분홍 꽃봉오리가 눈길을 잡아끕니다. 가장 산길을 걷기 좋을 때입니다. 동고비, 멧비둘기, 후투티, 노랑턱멧새, 직박구리, 까마귀, 오목눈이, 종다리, 곤줄박이가 가지를 옮겨 다니느라 바쁩니다. 바야흐로 새들의 번식 철입니다. 양지바른 무덤가의 마른 풀더미에서 인기척에 놀란 오리 두 마리가 푸드득 서툰 날개짓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아! 오리도 산에서 알을 깝니다. 엄지손가락만한 박새가 처절하게 나의 눈길을 돌리려 유혹합니다. 날개를 다친 것처럼 땅바닥에서 몸을 뒤척입니다. 분명 근처에 녀석의 둥우리가 있습니다.
“얘야, 이리 좀 나와 봐라.”
뒷울안 화단의 김을 매시던 어머니가 부르십니다.
새끼 참새 한 마리가 수돗가 바닥에서 알몸을 떨고 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는 날개 죽지에 막 털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손안에 든 작은 생명의 온기와 떨림. 녀석은 가엽게도 작고 여린 부리가 벌겋게 피로 물들었습니다. 의자 위에 국솥을 엎고 올라서 녀석을 조립식 판넬 둥우리에 넣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화단을 둘러봅니다. 둥우리에서 떨어진 또다른 녀석이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떨고 있습니다. 녀석도 둥우리에 넣었습니다.
“먹이을 서로 먼저 받아먹으려고 하다가, 떨어지나 보다.”
어머니가 쯧! 쯧! 혀를 차십니다. 이른 봄이라 먹이가 부족합니다. 어미의 부산한 먹이 사냥의 고달픔이 안쓰럽습니다. 걱정스런 나의 발걸음이 뒷울안으로 자주 향합니다. 두릅나무 둥치에 새끼 한 마리의 주검이 보입니다. 나는 꽃삽으로 새끼 참새의 주검을 명자나무 둥치에 묻어주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는 허공에서 깃털도 없는 날개짓을 하였겠지요. 다행히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혼나서 죽지 않으려고, 이제 둥우리 밖으로 나오지 않네”
어머니의 말씀이십니다. 구사일생으로 생을 이은 새끼 참새들이 날개에 힘줄이 붙고 깃털이 돋아나 삶을 이어가길 바랄 뿐입니다. 한동안 시골에서 참새를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집은 참새들이 아주 많습니다. 밭에서 벌레를 잡는 녀석들. 뒷울안의 나뭇가지에서 숨을 고르는 녀석들. 둥우리의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참새들의 즐거운 지저궘, 떼를 지어 개나리 울타리에 앉아 부리를 다듬는 놈들. 내일 아침도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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