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선방일기

대빈창 2013. 8. 5. 07:13

 

 

책이름 : 선방일기

지은이 : 지허스님

펴낸곳 : 불광출판사

 

저자 지허스님을 보며 나는 즉각 선암사를 떠올렸다. 십여년전. 그때 선암사 주지였던 지허(指墟) 스님이 쓴 한국 자생차와 차 문화에 관한 책을 읽고 내처 순천 조계산으로 향했다. 절 초입의 계곡에 자리 잡은 승선교와 강선루의 아름다움에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 온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경내의 삼인당과 칠전선원의 돌밭에 자리 잡은 야생 차밭을 보며 차나무의 직근성에 새삼 감탄했다. 그리고 차물을 받는다는 달마전의 석정을 보려다 출입금지라는 팻말에 크게 아쉬워했던 옛일을 떠올렸다. 아뿔사! 그 지허스님이 아니었다. 지허 (知虛)스님이었다. 종단부터 달랐다. 앞의 선암사 주지는 태고종이었고, 이 책의 저자는 조계종 선객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지허도 법명이 아니라 필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저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50년대 말에 탄허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는 말만 전해질 뿐이다. 이 글은 신동아 지인의 부탁에, 거절할 수 없는 인간적 처지로 할 수 없이 글을 연재했다고 한다. 저자는 세상에 자신의 허명을 애시당초 알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오대산(五臺山)의 품에 안겨 상원사(上院寺) 선방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일기의 첫 구절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초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난 지허스님의 이야기다. 여기서 안거란 수행자들이 산문 밖 출입을 일절 금하고 참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 참선을 하면서 겪은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김장을 담그고, 메주를 쑤고, 땔나무를 쌓아 동안거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결제가 시작되었다. 일주일 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이겨내며 용맹정진을 하는 스님의 의지에 감탄하지만, 나는 세속인답게 보름 별식으로 해먹는 찰밥과 만둣국 그리고 밤중 도둑 감자구이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대목은 ‘삼부족(三不足)’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선객의 가난이었다. 여기서 ‘삼부족’은 식부족(食不足), 의부족(衣不足), 수부족(睡不足)이 그것이다. 선객이 일 년에 소비하는 물량은 아래와 같다.(33쪽)

 

주식비 3홉 365일 = 1,095홉(1,095홉 x 15원 = 16,425원)

부식 및 잡곡은 자급자족

피복피

승복(僧服) 광목 20마(20마 x 50원 = 1,000원)

내복(1,500원)

신발고무신 2족(2족 x 120원 = 240원)

 

합계 2만원이다. 1970년대 초의 물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40만원 정도다. 1월 15일 해제일. 선객은 산문을 나섰다. 그리고 일기는 이렇게 끝맺었다. ‘남방행인 그 스님은 월정사로 들어갔고 나는 월정사를 뒤로 한 채 강릉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견성하기 위해 설악산 토굴로 향하는 지허스님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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