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 ~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 ~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입니다. 위 노래가사는 이 땅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가곡 ‘비목(碑木)’의 시작부입니다. 여기서 비목은 나무비석을 말합니다. 한국전쟁 때 강원 화천에서 숨진 이름 모를 4만여명의 국군과 중국군 돌무덤 앞에 놓인 나무비석이 비목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 허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상처를 꿰맨 실밥이 휴전선입니다. 휴전선을 따라 폭 4㎞, 길이 249㎞의 완충지대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한반도 허리 155마일을 가로지른 ‘삼팔선’에 인접한 김포평야에서 저는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대남방송 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마쳤습니다. 한들고개 꼭대기 집은 창문을 열면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함박눈이 밤새 퍼부은 겨울 아침, 창문을 열어젖힌 저의 망막에 비친 들녘은 붉은 빛을 쏟아냈습니다. 놀랍게도 흰 들판을 온통 붉은 삐라가 덮었습니다. 어린 저는 학교를 지각하면서 삐라를 주워 읍내 파출소로 뛰었습니다. 제 손에는 공책과 연필이 들렸습니다. 고교졸업까지 소풍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행군이 소풍을 대신했습니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누구나 목공소에서 나무총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교련 시간에 사용할 무기였습니다. 사열과 행군 그리고 총검술. 병영국가 대한민국의 어린 학생은 예비 군인이었습니다.
정전 60주년, 비무장 지대 DMZ이 생명의 땅으로 거듭났습니다. DMZ는 천연기념물 희귀동물에게 완전한 자유의 땅이기도 합니다. 남부 분단 상황이 태고적 자연생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주문도는 북녘이 지천입니다. 서해상 민통선 무인도인 신도, 석도, 비도를 돌아보았습니다. 섬들은 새들의 낙원이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귀한 새들 중 하나인 노랑부리저어새의 번식지입니다.
저는 위 이미지에서 비목이 생각났습니다. 나무비석에 씌운 녹슨 철모가 떠올랐습니다. 녹슨 삽 손잡이에 밀짚모자를 씌워주고 싶었습니다. 삽자루에 붙은 분홍 덩어리는 왕우렁이 알입니다. 민통선의 섬 볼음도는 무농약, 무화학비료 농법인 유기농사를 짓습니다. 땅을 살리는 생명농업인 우렁이 농법입니다. 모내기를 하고 논에 풀어 놓은 왕우렁이들이 잡초를 뜯어 먹습니다. 그리고 왕성한 번식력으로 알을 습니다. 저 알에서 깨어난 새끼 우렁이들에게 논의 잡초가 먹이입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팔꽃을 세다 (0) | 2013.09.23 |
---|---|
생태 섬을 향한 한 걸음 (0) | 2013.09.09 |
꿩의 이소를 안개가 덮어주다. (0) | 2013.07.15 |
세물에는 꾸서라도 눈을 뜬다 (0) | 2013.07.05 |
이럴수가 이앙기에 합승을 하다니... (0) | 201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