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행복한 만찬
지은이 : 공선옥
펴낸곳 : 달
나는 작가 공선옥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 작가 중 첫 손가락으로 꼽으면서 막상 나의 책장에는 작가의 소설이 한 권도 없다. 고작 문학상작품집에 실린 단편소설을 띄엄띄엄 접했을 뿐이다. 언제인가 이상문학상 작품집 리뷰에서 다음 해 수상 작가가 공선옥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작가의 넉넉지 않은 삶을 어디선가 귀동냥했다. 이 땅의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천착해 온 작가는 91년 창비 겨울호에 중편소설 ‘씨앗불’로 문단에 나왔다. 20여년이 넘은 그 세월 나는 서해의 황량하기 그지없는 신흥공업도시의 지하 자취방에서 작가를 처음 만났다. “나의 궁핍한 시절이 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작가는 말했다. 나는 위장취업자가 아닌 생계 취업자로 공장을 떠돌아다녔다고. 내 책장에 있는 작가의 유일한 책은 ‘말’에서 나온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라는 산문집이다. 그리고 10년 만에 또 다른 산문집인 이 책을 잡았다. 공선옥 음식 산문집. ‘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를 따지거나 몸에 좋고 안 좋고를 따지는 행위가 실은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모독(4쪽)’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다. 웰빙 바람을 타고, 대중 작가들이 음식에 대한 평을 늘어놓은 책들이 한동안 서점의 인기코너를 장식했다. 나는 그런 세상인심이 얄미워 그런 부류의 책들을 멀리했다. 안도현의 음식시편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잡았을 뿐이다.
고구마 / 쑥 / 감자 / 보리밥 / 감 / 쌀밥 / 무 / 콩 / 부각(가죽나무 잎) / 다슬기탕(대사리탕) / 토란 / 시래기 / 머위(머구) / 죽순 / 방아잎(방애잎) / 부추(솔) / 동부(돈부) / 호박 / 봄나물(달래, 냉이, 씀바귀, 미나리) / 고들빼기 / 초피(젬피) / 추어탕 / 메밀 / 계란 / 산딸기 / 더덕
이 책에 나오는 스물여섯가지 먹을거리다. 작가는 전남 곡성에서 나고 자란 시골 가시내였다. 어릴 적 소박하지만 행복했던 밥 상. 나는 한 상 푸짐하게 받아들고 멋쩍게 입가에 웃음을 매달았다. 그것은 작가와 같은 연배에서 오는 추억의 공유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맛에 대한 기억을 구수하게 되살린 것에 나는 새삼 감탄을 내뱉었다.
‘갱엿이요, 호박엿이요, 구멍 난 솥단지, 고무신, 사이다병, 머리카락을 외치는 엿장수는 어느새 건넛마을로 넘어가고 있다.(191쪽)’ 어린 작가는 호박엿이 먹고 싶어 멀쩡한 고무신을 찢지만 질기디질긴 기차표 검정 고무신은 말짱하고 무정한 엿장수는 장단 맞춰 가위질을 질겅거리며 마을을 떠났다. 나는 다행히 김포 들녘 한가운데서 나고 자라, 엿장수가 오면 아버지 몰래 바꿔먹는 물건이 있었다. 빈 비료포대였다. 김포는 전방이라 군부대가 흔했다. 하교 길, 동무들과 나는 포복으로 철조망을 통과하여 쓰레기장을 뒤져 쇠붙이를 훔쳤다. 그 시절 쇳덩어리는 큼직한 엿가락과 같았다.
“선옥아, 저녁에 추어탕 끊일 텡께 와서 불 좀 때도라(230쪽)” 나의 어린 시절 고기는 생일이나 명절 때 국에 넣은 몇 점이 고작이었다. 그 부족한 동물성단백질을 미꾸라지가 대신 했다. 중천에 매달려 기울 줄 모르는 뙤약볕 쏟아지는 여름 방학 내내 나는 형들을 쫓아다녔다. 들녘 수로를 반도로 뒤졌다. 장작불이 지글거리는 가마솥에 왕소금으로 닦은 통 미꾸라지와 깻잎, 마늘, 풋고추를 넣고, 국물이 끊으면 국수나 수제비를 띄웠다. 이마에 흥건하게 땀방울을 흘리며 어린 나는 게걸스럽게 추어탕으로 몸보신을 했다.
‘현금 대용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게 계란이었다.(249쪽)’ 큰 형과 나는 여덟 살 터울이다. 중학만 졸업하고 대처에 돈 벌러 나갔다 얼마 못 버티고 돌아 온 형은 염생이처럼 담배만 일찍 배워 입에 매달고 살았다. 가난한 시골살림에 현금이 있을 리 없었다. 형은 닭이 계란 낳기를 기다려 막내인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온기가 가시지 않은 누런 계란을 손에 쥐고 나는 신작로 정류장 구멍가게로 뛰었다. 계란 대신 내 손에는 ‘새마을’ 한 갑이 들렸다. 필터도 없는 싸구려 담배 한 갑과 계란 한 개가 물물교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