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의 눈길에 기둥에 매달린 한글로 적힌 경고문구가 들어왔다. 『음식 남기시면 Ø500 추가로 내셔야 합니다!』『소주 반입금지』갑자기 썰렁한 홀에 고함이 난무했다.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한가족으로 보이는 중국인들이 술에 취해 난장판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태국 종업원들의 눈살이 찌푸렸다. 일본인들의 관광지는 이제 동남아를 벗어나 괌이나 하와이로 향한다. 그 뒤를 한국인들로 메꾸어졌고, 이제 그 자리를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경제성장에 따른 극동 3국의 관광지의 추태. 저열한 자기과시욕의 악순환이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가이드에게 얻어들은 한국인의 추태를 덧붙여야겠다. 몇 년전 바로 이 식당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제적 개망신의 사태는 한국인들이 고국에서 가져 온 소주를 먹은데서 비롯되었다. 식당의 규칙은 반입한 술을 마실 경우 Ø1,000바트를 벌금으로 내야한다. 막무가내로 주인장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린 그들은 Ø1,000바트를 물고 이제 벌금을 물었으니 아예 공개적으로 먹겠다고 술병을 들고 추태를 부리다 강제 추방당했다. 씁쓸했다.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도 창가 좌석을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내게 건네진 승선표는 49B 왼쪽 창가에 붙은 3개좌석에서 중간이었다. 0시 10분발 방콕발 인천행 대한항공이었다. 어렵사리 남아 도는 시간을 때운 일행은 10시 55분 탑승수속을 밟았다. X-Ray 감시대를 통과하던 나의 소지품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방콕공항 근무원은 나의 륙색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들었다. 짧은 영어회화가 한스러웠다. 그녀의 빠른 어투에서 내가 건져올린 단어는 'return' 이었다. 선물로 받은 칼을 나는 코르크 마개를 개봉할 때 사용하려고 소지품에 넣었다. 이륙한 비행기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가로질러 중국 상해로 직진했다.
기내의 대부분의 승객들은 좌석을 뒤로 밀치고 잠을 청했다. 한국시각 새벽 4시 기내식이 나왔다. 우리 일행은 간단한 컵라면으로 요기를 때웠다. 여명이 터오면서 바다가 빛나기 시작했다. 창밖 동체의 왼날개 밑으로 가벼운 새털구름이 바다위에 두둥실 떠다녔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비행기가 일몰을 지루하게 연장시키더니,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일출을 오히려 맞으러 달려가는 형국이었다.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 7시 20분에 도착했다. 소지품 가방을 찾는 데, 오히려 방콕공항에서 압수당한 나의 맥가이버칼이 예쁘게 포장된 채로 공항 직원 손에 의해 먼저 전달되었다. 나는 웃으개 소리를 했다. “다음 여행시는 무조건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하자”고. 우리는 열대의 폭염에서 5시간만에 고국의 쌀쌀한 초가을 날씨속 강화행 국도를 달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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