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1

대빈창 2014. 1. 27. 06:32

 

 

2월의 첫째 일요일 아침, 그는 ‘호반의 도시’ 춘천에 있었다. 춘천이 이 낭만적인 이름을 얻은 이유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건설된 의암댐으로 조성된 거대한 인공호가 도시를 감싸안았기 때문이다. 늦겨울 아침, 호반의 도시는 엷은 안개로 제 몸을 가리웠고, 겨우내 눈발을 날리던 하늘은 미련이 남았는 지 여적 우중충한 낯색을 펴지 않았다. 그랬다. 도시는 회화적 이미지인 회색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눈녹은 물이 기름과 먼지에 절어 도로는 거무스름하게 질척거렸다. 그늘에 쌓인 눈은 본연의 색깔을 잃고 죽음의 빛을 띤채 신음을 내질렀다. 여는 지방도시나 매한가지로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음식점이 밀집되어 나그네를 불렀다. 해장국 밑반찬으로 나온 고추장아찌의 톡쏘는 알싸한 맛에 혀를 굴리며 그는 소양강댐 선착장이 종점인 11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목적지까지 대략 30분 정도가 소요되니 청평사행 첫배를 탈 수 있다는 안도감에 그는 편히 차내를 둘러보았다. 승객으로 보퉁이를 인 할머니 한분과 대여섯명의 남녀고교생이 전부였다. 엷게 장막을 드리운 안개가 버스가 다가서자 저만치 뒷걸음질을 쳤다. 강원도농업기술원을 지나자 창밖 풍경이 환하게 밝아졌다. 버스는 회색빛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전원을 달리고 있었다. 시야가 밝아진 것은 순정한 본질을 간직하고 대지를 뒤덮은 눈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 덕분이었다. 버스가 구절양장의 가파른 고갯길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다. 헐벗은 잡목숲 사잇길은 채 눈이 녹질 않아 빙판이었다. 입력된 기억을 상기한 버스는 예사롭지 않게 제 갈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다만 그 혼자 고갯길의 경사도가 아찔하여 움찔했을 뿐이다. 창밖으로 거대한 피라미드의 한면이 시야를 가로 막았다. 총저수량이 29억톤인 소양강댐은 연인원 550만명이 투입되어 6년반의 공사끝에 ‘73년 10월에 완공된 댐이다. 소양강댐은 댐을 쌓은 재료가 자갈․모래․진흙을 뒤섞은 우리나라 최대의 사력댐으로 거무튀튀한 경사면이 나그네에게 피라미드를 연상시켰다. 댐 정상의 공터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그는 시계를 보며 선착장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양구, 인제를 연결하는 쾌속선과 청평사를 운행하는 뱃길의 출발점인 선착장 안내판의 첫배 시간은 10시였다.

하릴없는 그는 한시간의 공백을 메꾸어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선착장의 내리막길가에 휴게소와 간이 노점상이 번호판을 달고 일렬로 도열했다. 그는 선착장에서 가까운 휴게소 문을 밀쳤다. 유원지 초입의 쉼터가 매양 그렇듯이 1층은 식당이고, 전망좋은 2층은 커피숖이었다. 그는 인공호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원두커피를 주문했다. 물가에 발을 담근 산자락의 급한 경사면에 희고 큰 고딕체로 ‘한국수자원공사 소양강 다목적댐’이라고 새겼다. (계속)

 

p.s 2001년 입춘. 나는 오봉산 청평사에 있었다. 이미지는 구글에서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