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2

대빈창 2014. 1. 29. 07:09

겹겹이 주름진 능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다, 산자락이 거무스름한 물길에 갇혔다. 옷벗은 잡목들이 희끗희끗한 잔설을 스치는 찬바람에 몸을 떨었다. 언젠가 한국화 도록에서 보았던 청전 이상범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그는 메모노트를 긁적이다, 학창시절 청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던 동료를 떠올리고 배낭속의 손전화를 꺼냈다. 그녀가 ‘소양강댐은 3 ~ 4년에 한번씩 물을 방류하는데 지금 시기는, 특히 한겨울이라 수량이 많이 줄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눈앞의 산자락은 고교시절 상고머리처럼 밑부분이 맨땅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노트에 단상을 긁적이다,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무심결에 저지른 어이없는 실수에 그는 무츠름해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주인내외는 카운터앞 차탁에서 늦은 아침을 들고있었다. 각설탕만 넣은 머그컵의 원두커피는 제혼자 몸을 식히다 난데없이 담뱃재 벼락을 맞은 것이다. 배낭을 추스리는 그를 보고 아침을 마친 바깥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청평사에 가시나 보죠”

“예, 그런데요”

“휴일에는 시간 관계없이 손님이 차면 배가 떠요”

“고맙습니다” 그는 서둘러 배낭을 걸머지고 밖으로 나섰다.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발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청평사 왕복선의 승객정원은 90명이었다. 아직 찬 날씨라 사람들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실외좌석을 비우고 복도까지 빼곡히 실내로 몰려들었다. 선실은 콩나물 지하철처럼 청평사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찌되었든 배는 10시 정각에 첫 운행을 시작했다.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나아가는 속도에 흩어지는 휜 포말이 선창에 빗줄기처럼 그어내렸다. 소양강의 빙어처럼 날씬한 몸매의 쾌속선은 고작 10여분이 지나 목적지에 닿았다.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계곡 물줄기는 기나긴 여정을 중도에서 차단당하고, 산뿌리가 담긴 인공호반에 몸을 풀었다. 계곡이 호반에 잠겨드는 어름에 간이 선착장이 있었다. 청평사를 찾아가는 길은 강화도의 관음도량 보문사를 찾는 길과 흡사했다. 다만 10분거리의 뱃길이 청평사는 호반을, 보문사는 폭좁은 해협을 건넌다는 차이였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겨울인지라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이 하얗다. 고찰 청평사가 자리잡은 오봉산은 예전에 경수산, 청평산이라고 불렸다가, 최근에 오봉산으로 바뀌었다. 이름 그대로 소양호반에서 보면 다섯개의 암봉이 정상을 이루었다. 자연은 모든 것을 그대로 오랫동안 포용한다. 춘천에서 청평사를 찾아오는 길에 사람의 손을 탄 모든 인조물은 그 흔적을 애써 지웠다. 겨우내 쌓인 눈이 청평사를 찾는 길손들의 발자취에 하얀 도로처럼 다져졌다. 배에서 맨 나중에 내린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몇걸음을 떼자, 계곡너머에 사람의 손길이 미친 꽤 넓은 평지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지금은 텅 비었지만, 한때 제법 규모가 큰 건축물이 들어앉았을 것이다. 눈에 묻힌 계곡을 왼쪽에 끼고, 20여분을 걷자 매표소가 나타났다. 그가 입장료를 지불하려고 배낭의 지갑을 꺼내자, 앞서 도착했던 무리의 일행중 한 아주머니가 "절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냥 올라가라" 한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민박집, 식당이 운집한 위락단지를 지나, 계곡을 건너지른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청평사행 산길에 접어 들었다. 이정표가 청평사까지 1.5km라고 길안내를 해주었다. 집요한 먹자판 문화의 위력은 이곳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활시위처럼 굽은 폭좁은 산길을 오르는데 장난끼많은 낮도깨비처럼 돌연 때아닌 산중에, 자리를 잘못잡은 횟집들이 불쑥 나타났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