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일하는 아이들
엮은이 : 이오덕
펴낸곳 : 보리
아버지하고 / 동장네 집에 가서 / 비료를 지고 오는데 / 하도 무거워서 / 눈물이 나왔다. / 오다가 쉬는데 / 아이들이 / 창교 비료 지고 간다 / 한다. / 내가 제비 보고 / 제비야, / 비료 져다 우리 집에 / 갖다 다오, 하니 / 아무 말 안 한다. /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 나는 슬픈 생각이 났다.
‘비료 지기(56 ~ 57쪽)’의 전문이다. 안동 대곡분교 3년 정창교의 시다. 날짜는 1970년 6월 13일이다. 눈에 익은 어린이 시다. 그렇다. 2004년 ‘따뜻한 손’에서 재출간된 김훈·박래부의 두 권짜리 문학기행집의 표제였다.
엮은이 이오덕 선생은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나셔서, 2003년 8월 충북 충주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이 땅의 교육 문제와 어린이 문화, 글쓰기 운동, 어린이문학 비평과 우리 말글을 바로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1944년 초등학교 선생이 된 이래, 전두환 정권이 하도 발악을 해서 그만두기까지 43년을 교직에 몸담았다. 선생의 무덤에는 두 시비가 마주보고 서 있다. 권정생의 ‘밭 한 뙈기’와 자신의 ‘새와 산’이 새겨졌다. 70년대 초반 경북 산골교사가 안동의 무명 아동문학가를 찾아갔다.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 땅의 어린이를 끔찍이도 아끼던 두 분은 이제 하늘나라에 계시다.
표지그림이 반가웠다. 80년대를 힘겹게 건너 온 이들은 오윤의 판화를 보면 가슴부터 먹먹해진다. 오윤 선생은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일하는 아이의 모습을 판화에 새겼다. 이 시집을 위한 판화로 제목 또한 ‘일하는 아이들’이다. 이 책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이오덕 선생이 가르쳤던 농촌어린이들이 쓴 시 모음집이다. 160여명의 아이들이 쓴 시가 5부에 나뉘어 272편이 실렸다. 책 앞머리에 크레용으로 그린 어린이 그림 3점과 본문 여백마다 크레용을 사지 못해 갱지에다 연필로 그린 산골 아이들의 그림이 실렸다.
아침을 먹고 위아재께서 고속도로 이야기를 하여 주셨다. 우리 나라 고속도로는 마구 미국 거라고 하셨다. 왜요? 하니 미국 돈을 갖다 썼기 때문이지 하신다. 그럼 그 돈을 어얘 갚아요? 하니 나라를 팔아야지 하고 말하셨다. 팔려가니껴, 하니 몰래, 하신다. 나는 팔려갈까 봐 겁이 났다.
‘고속도로(128쪽)’의 전문이다. 1970년 7월 11일에 어린이가 쓴 시로 78년 간행된 초판에 실리지 못한 시다. 아이들도 알 것은 다 알고 있다. 뒤가 구린 군홧발 정권은 아이들이 쓴 시도 책으로 엮지 못하게 억눌렀다. ‘이 시집에 시를 쓴 아이들은 지금 거의 모두 40대의 장년이 되어 우리 역사의 가장 힘겨운 고비를 넘기고 있을 것입니다.(332쪽)’ 이오덕 선생이 2002년 4월 고침판을 엮고 나서 쓴 글이다. 이제 시를 쓴 아이들은 50대가 되었다. 어느덧 세월은 반세기가 흘러갔다. 시대는 앞으로 나아갔는가. 아니다. 배가 부른 나머지 이제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미국한테 전시작전권을 더 오래 가져달라고 오히려 떼를 쓰고 있다. 그리고 애국이란다. 정신분열증적 자학이 갈 데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