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의식각성의 현장
지은이 : 조동일
펴낸곳 : 학고재
길들여진 습관은 벗어나기가 힘들다. 여느 때처럼 온라인 서적에 들어가자마자 검색창에 '학고재'를 두드린다. 온갖 종류의 답사기를 섭렵한지라 식상하기 마련인데도 '의식각성의 현장'이라는 무게가 느껴지는 표제에 마음이 끌린다. 더군다나 신뢰하는 출판사에, 저자가 국문학의 태두 조동일이다.. 책씻이를 하고나니 미련없이 주문하길 잘했다는 자기위안이 든다. 조동일이 누구인가. 국문학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한국문학통사'의 저자이다. 현재는 4판까지 찍어냈지만, 나는 '94년에 발간된 3판 6권짜리 양장본을 소장하고 있다.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단절이라는 거대한 화두에 매달려, 역사변환기의 문학 양상을 고찰하고, 전통사회의 기층문학을 포용해 역사와 문학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한국문학 전체를 통사적으로 아우른 우리시대의 국문학도의 첫번째 필독서다. 쉽게 말해서 한국문학통사를 꿰어야 우리 문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청맹과니를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인다움의 증거를 찾아가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듯이, 저자는 모두 26곳의 '사상의 거처' 현장을 발품을 팔아 빚어 낸 것이 '의식각성의 현장'이다.
20여년 전 젊은 시절 나는 제주도에 배낭을 메고 5일간 머물렀다. 화산섬의 기승절경을 이곳저곳 돌아보면서 우리 산천의 다양함에 한껏 고무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순진(?)이 낯 뜨거움으로 다가온다. 봉건시대 중앙정부의 수탈과 억압에 신음하던 변방 민중들의 애환을, 강도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병참기지로서, 해방공간에서 남북통일정부에 대한 열망이 4·3 항쟁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현장으로서, 목 좋은 땅투기 지역으로 전락한 고향을 바라보는 원주민들의 슬픈 눈망울을 바로보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의 답사란 도대체 이 시대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하는 회한 때문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온 몸으로 이 땅을 지켜 온 민중의 투쟁을 자각하지 못한 기행은 한갖 나그네의 관망자적 시선에 다름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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