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지은이 : 박노자
펴낸곳 : 한겨레출판
오랜만의 흡족한 책읽기였다. 내가 알고있는 이 땅의 대표적 좌파 논객은 홍세화, 김규항이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 책으로 접하게 된 박노자를 가장 윗길에 놓아야겠다. 박노자는 한국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논리로 비판적 안목을 갖춘 독자들에게 인기스타였다. 나는 매번 온라인 서적에 들어가 가트에 박노자의 저작을 담았지만, 결정적으로 주문 시에는 삭제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칼럼집이 갖추어야 할 시의성이 문제였다. 항상 때를 놓치다가, 운 좋게도 따끈따끈한 최근 칼럼집을 손에 넣자마자 서둘러 책씻이를 했다. 하지만 400여쪽에 불과한 분량이지만 내용의 깊이는 만만치가 않아 근 보름여 간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을 열기 전에 독자들은 우선 지은이의 신상명세서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토종 좌파 논객보다 귀화인 박노자의 칼럼이 우리 사회를 해부하는데 날카로움을 자랑하는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논객의 날카로움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지연, 혈연, 학연에서 자유로워야 그 벼린 날을 맘껏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박노자의 칼럼은 태생적으로 유리(?)하다. 박노자는 러시아 상트페테부르그에서 태어나 상트페레부르그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을 가진 러시아인이었으나,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면서 박노자라는 이름을 갖는다. '춘향전의 나라'에 대한 동경심이 발전하여,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전근대적인 폐습, 군사주의와 국가주의, 인종주의를 비판한 칼럼집들을 펴내면서 지식인 사회의 뜨거운 감자를 자임했다.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국인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지내면서 오슬로 국립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박노자'라는 한국 이름에서 나는 뚜렷한 근거를 찾을 수 없지만, 자연스레 무위자연을 설파한 도가의 시조 '노자'를 떠올린다. 돈이라면 염라대왕 금이빨이라도 빼 올, 갈데까지 간 황혼기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려면, 천박성과는 담을 싼 노자의 사자후가 마땅하지 않은가.
박노자는 머리말에서 독자에게 이렇게 권유한다. '각종 규율로 우리의 내외면을 구속하는 한편, 소비라는 달콤한 당근과 대중문화라는 신종 아편으로 우리를 부단히 유혹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순치되어 주체적 인간의 뿌리인 반란성을 상실한 동아시안인으로서 우리가 새롭게 지향해야 할 반란자적 모습을 찾자고.'나는 저자의 따끔한 일갈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승엽의 홈런에 열광하면서 그 이면의 제국주의시대 피를 먹고 자란 요미우리 신문의 일그러진 진면목을 보았는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항(?)으로 대중매체 공중파 방송이 연일 내보내는 고구려 역사를 왜곡한 사극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았는가. 아예 내팽개쳐버린 것이 나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지은이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기성권력이 조장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반란자를 새롭게 조명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적 연대성'이라는 개념은 역사의 피해자인 우리에게 도발적으로 들린다. 나부터라도 20세기 초반의 군국주의 일본의 공식 이데올로기인 '동아시아 대동영권'이 먼저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플레하노프와 가타야마 센의 만남이 상징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현대판 제국주의인 신자유주의의 망동을 종식시킬 수있는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신자유주의의 기승은 전 세계의 급격한 우경화·보수화로 나타나고 있다. 반란자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악습인 국적, 애국심, 민족주의, 권위주의, 숭미주의, 남성우월주의의 대척점에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나의 관념성은 그동안 민중의 혁명성에 대한 근거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실의 노동계급은 분화되었고, 상층은 이미 잉여노동으로 축적된 자본이 제공하는 달콤한 당근에 깊이 포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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