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山海經
옮긴이 : 정재서
펴낸곳 : 민음사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저산이라는 곳인데 물은 많지만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이곳의 어떤 물고기는 생김새가 소 같은데 높은 언덕에 살고 있다. 뱀꼬리에 날개가 있으며 그 깃은 겨드랑이 밑에 있는데 소리는 유우(留牛) 와 같다. 이름을 육(鯥)이라고 하며 겨울이면 죽었다가 여름이면 살아나고 이것을 먹으면 종기가 없어진다.
남산경(南山經)의 다섯 번째 꼭지(54쪽)다. 내가 다시 펼친 책은 초판이 1985년도에 나왔고, 개정 2판 4쇄로 1993년에 출간되었다. 책술에 찍힌 북마크는 부평 한겨레서적이다. 당시 부평 지역에서 가장 큰 책방이었다. 대우자동차 노동자였던 어릴 적 죽마고우를 만나 술 한잔하고 내친 김에 책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세월 먹은 책술은 누렇고, 겉표지의 주황색이, 책등은 햇빛에 엷은 노랑으로 바랬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은 산경과 해경으로 구분된다. 산경(山經)은 중국 및 주변 지역을 다섯 방위로 나누고 447곳의 산에 대해 일률적인 방식으로 서술했다. 산천의 형세를 설명하고 광물·동물·식물·괴물·신령이 등장하고 마무리는 제사 드리는 방법을 소개했다. 해경(海經)은 풍속과 사물, 영웅의 행적, 신들의 계보, 괴물에 대한 묘사 등 신화적인 요소가 강하다. 이 책의 황당무계하고 기괴하고 별난 ‘믿거나 말거나’에 대해 주산해경서(注山海經敍)에서 곽박(郭璞)은 이렇게 말했다. “사물은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을 거쳐서야 이상해 지는 것이기에 이상함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이 이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34쪽)
아무튼 나는 이 책을 20년 만에 다시 펼쳤다. 그 세월동안 부평의 책방은 문을 닫았다. 굴지의 자동차 공장에 다니던 친구는 다국적 기업 GM에 먹힌 일터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역설적으로 부평(富平)을 읽었고, 또 다른 다국적 종자회사가 GM(유전자 조작)으로 이 땅의 민중들을 모르모트화시키는 현실을 풍자하는 ‘산해경’에 빗댄 시 한편을 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묵은 책갈피를 뒤적였다. 작가 신경숙은 상상력에 도움이 될까하여 이 책을 하루에 한쪽씩 들여다보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뿔싸! 나의 우둔함이여! 문단의 거목 박상륭의 유일한 산문집은 산해기(山海記)다. 소설가 박인홍은 ‘염유어’와 ‘벽 앞의 어둠’에서 산해경의 세계를 빌렸다. 마지막 결정타는 아직 펼치지 않은 책장에 꽂힌 황지우의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이었다. 시집에 실린 연작시 ‘山經’은 산해경을 패러디해 현실을 풍자하고 있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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