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흙의 경전

대빈창 2014. 4. 9. 08:00

 

 

책이름 : 흙의 경전

지은이 : 홍일선

펴낸곳 : 화남

 

어머니 / 이화명충 여뀌 독새풀보다도 더 무서운 게 / 암보다 더 무서운 게 / 머리 검은 인종들이었다고 / 손주들에게 일러주는 것이 / 큰 죄 짓는 것 같다며 안쓰러워하던 어머니

 

‘어머니 발자욱 소리에 벼 익어가다’(22 ~ 23쪽)의 부분이다. 이 시집은 5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 3부까지 43편은 농업, 농민, 농촌, 흙, 대지, 대자연에 대한 서정시 43편이 실렸다. 4부의 연작시 3편은 근대화,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수탈당하는 농민의 애환을 그렸고, 5부 장편서사시 ‘聖시화호’는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막무가내 린치에 시달리는 이 땅의 가엾은 생명들을 노래했다. 시집을 읽어 나가면서 나의 눈길은 1부에서 시인이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글 시편에서. 2부는 먼저 세상을 뜬 채광석, 김건남, 이규황 시인들과 이 시대 시인의 자리에 대한 시들. 3부는 매향리 쿠니 미군사격장과 시화호 우음도의 서러운 현대사를 읊은 시편들에 머물렀다.

시집은 제법 책술이 두껍다. 시인이 김준태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큰붓이 그리운 시대입니다’와 백무산과 용환신 두 시인의 발문과 이승철, 방남수 두 시인이 선배의 삶을 시로 엮은 ‘石農者 논에 詩 한포기 모시다’가 부조를 했다. 여기서 석농石農은 평생 석우리 농부의 아들을 소원하는 홍일선 시인의 자호이다. 출판사가 낯설었다. 화남. 제주도가 낳은 큰 작가 현기영의 산문집 ‘바다와 술잔’이 유일하다. 표지 그림이 눈길을 끈다. 저 멀리 산자락 아래까지 쟁기질 된 무논으로 보였다. 류연복의 ‘빈들 생명’이다. 나는 부끄러웠다. 80년 창비로 등단하여 한국 농민시의 전형을 보여 준 시인을 여적 모르고 있었다니. ‘흙의 경전’은 16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이다. 귀농 7년차. 시인은 여주 점동면 도리의 ‘바보 숲 명상농원’에서 닭 600마리를 키우는 농부다. 시인의 닭들은 숲 전체가 놀이공원이다. 시인이 마지막 삶터로 잡은 남한강변 여주 도리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급전직하했다. 백사장과 여울이 사라졌고 도리섬이 뭉텅 잘려나갔다. 4대강 공사는 여주 사람들의 자긍심이 묻어나는 여강을 고작 6m 깊이의 수로로 전락시켰다.

농사꾼 시인은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이 알아먹지 못하는 시는 죄라고 생각한다.” 농업과 생명 그리고 어머니 대지로 귀환한 시인의 육성이 나의 귓전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곳 가난한 마을로 돌아가자’(14 ~ 15쪽)의 일부분으로 마지막을 삼는다.

 

어머니 기다림으로 불 켜지던 집 / 먼데서 불빛 바라만 보아도 / 시린 가슴 따스워지는 마을 / 가난한 집으로 어서 돌아가자

가난 아닌 것 / 다 거짓이었던 나날 있었으니 / 죄 짓지 않고서도 다들 고단해야 했던 / 그런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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