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눈물은 왜 짠가

대빈창 2014. 5. 12. 08:00

 

 

책이름 : 눈물은 왜 짠가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책이있는풍경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빨간 양철 지붕을 얹은 안채, 파란 양철 지붕을 인 행랑채, 흰 슬레이트를 올린 화장실로 되어 있다.’(122 ~ 123쪽) 월세 10만원 세주고 살던 동막교회 입구의 허름한 시골집은 시인이 강화도에 처음 삶터를 내린 집이었다. ‘나는 댓돌을 내려서 안마당을 지나 양철 대문을 열고 바깥마당으로 나갔다.’(120쪽) 그렇다. 봄기운이 무르익은 화창한 어느 날 나는 시인을 찾았다. 손에 들린 두 개의 비닐봉지에 하나는 초지진 옆 포구의 살아 꿈틀거리는 주꾸미와 다른 하나는 동막해변 편의점에서 산 소주가 들렸다. 우리는 안마당 수돗가에서 휴대용 가스렌지에 물을 데워 주꾸미를 데쳐 소주잔을 기울였다. 자리가 파할 즈음 시인이 속면지에 자필서명한 첫 산문집을 건냈다. 정확히 11년 전 이맘 때였다.

 

○ ○ ○ 님께 / 2003. 새봄 / 주꾸미를 같이 먹으며 결혼하길 빌며 / 함민복 올림

 

‘그물에 걸린 꽃게 좀 따 가라고 그물 주인이 사정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는데’(187쪽) 그야말로 옛날 얘기다. 나도 귀동냥한 말이다. 그때 그물에 걸린 꽃게를 지게로 지고나와 퇴비장에 쏟아 밭 거름으로 썼다. 지금 꽃게는 금보다 윗길이다. 그만큼 강화바다는 가물었다. 가난한 섬사람들은 맛도 볼 수 없다. 외포리포구 가는 길의 줄지은 꽃게탕 집은 맛집을 찾아 몰려드는 도시인들로 연일 북새통이다. 섬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낚시만 드리우면 끌려 올라오는 망둥이가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망둥이는 볼따구니 살이 가장 맛이 좋다. 그것은 ‘살아 있는 한 호흡을 해야 하니까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아가미 근육 살이 제일 쫄깃쫄깃하고 맛있다’(16쪽)

‘소주 한 컵을 들이붓고, 조심해서 까도 기름때 지문이 묻는 계란을 소금에 쿡 찍어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59쪽) 시인이 소젖 짜는 기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때 오후 세시 새참 장면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눈길은 25년 저쪽 세월을 건너뛰고 있었다. 안산공단 ○ ○ 화학. 오후 3시경. 배가 출출해지면 진행되던 작업을 한꺼번에 몰아붙이고 부리나케 우리는 블록 사거리마다 자리 잡은 컨테이너 매점으로 달려갔다. 찐 달걀을 소금에 찍고, 종이컵에 따른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학수형은 목울대를 울컥대며 인상을 썼다. 급하게 공장으로 돌아오는 길 다른 형에게 물었다. “속이 부대껴서 그런 거야!” 화공약내에 찌든 목구멍을 소독하는 우리들만의 의례였다.

중이염을 앓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고깃국을 먹이려 찾은 설렁탕집. 가난한 모자가 국물을 두고 벌이는 실랑이가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눈물은 왜 짠가’를 표제작으로 한 시인의 첫 산문집이 11년 만에 개정증보판 양장본으로 새로 선보였다. 천민자본 가치만이 끝없이 팽배한 이 땅. 돈도 되지 않는 시만 써 온 세상살이에 너무도 서투른 시인. 그의 문학적 모태가 담겨진 산문집은 시인이 살아온 이야기였다. 개정판의 5장 ‘자연의 청문회’에 실린 13가지 이야기가 새롭다.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간추린 글이었다.

시인의 인삼가게가 이사했다. 강화도의 인삼센터는 모두 세 곳이다. 읍내의 강화인삼센터, 시인의 전 가게가 있었던 초지대교 입구의 초지인삼센터 그리고 새로 이사한 강화대교 입구의 ‘고려인삼센터’. 가게 이름은 그대로 ‘길상이네’다. 개업축하 화환을 준비하다 문득 시인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소감이 떠 올랐다. 그랬었지. 쌀 포대가 곁들여진 화환이 제격이었다. 가게 이사로 시인이 애썼다. 뭍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 시인이 조수석에 종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막삼이야, 어머니 다려 드려”

어머니는 인삼을 얇게 저며 그늘에 말렸다. 찬바람이 불면 나는 따끈한 인삼차로 몸을 녹일 수 있겠다. 시인을 만난 지가 15년을 넘어섰다. 시인은 나의 삶에 있어 방부제였다. 인간미가 끝없이 훼손되는 이 땅에서 시인의 순수성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시인을 만난 인연이 고마웠다.

 

친구 ○ ○ ○에게 / 함민복 올림 / 2014. 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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