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 밤 물때 이는 소리
밀려오고 / 밀려오는
이 밤 여기 서 있으면
멀리 / 가까이
무엇인가 울고 / 무엇인가 흐느끼는 / 숨소리
오렴 / 오렴 / 어서 오렴
밤바다 / 슬프고 아름다운
밤 물때 / 이는 소리
서해 섬과 바다의 시인 이세기의 ‘밤 물때’ 입니다. 물때는 사리입니다. 쪽사리지만 물이 나는 속도가 빠릅니다. 아침저녁 산책의 반환점입니다. 허공에 하늘거리는 넝쿨은 머루입니다. 넓은잎사귀 나무는 음나무 입니다. 잠시 다리쉼을 하며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 분지도에 하염없이 눈길을 던졌습니다. 옛그림 하나가 떠오릅니다.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 인재仁齋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입니다. 큰 너럭바위에 팔을 괴고 편안하게 엎드린 선비가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는 그림입니다. 배경은 단출합니다. 뒤로 깎아지른 벼랑에 뿌리박은 넓은잎나무와 나무줄기를 휘감은 덩굴이 보이고, 물가에 삼각형 모양의 작은 바위 세 개와 갈대로 보이는 거친 풀이 전부입니다. 산들바람에 눈앞에서 하늘거리는 머루 줄기가 그림의 엎드린 선비 앞으로 길게 드리운 넝쿨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때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 일찍 나왔는가 보네.”
“사리 물때라 물이 빨리 나니깐 괜찮아.”
손에 그래(상합채취도구)를 쥐고, 등에 각자 배낭을 멘 대빈창 할머니 두 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 할머니들께 자리를 비켜 주었습니다. 갯벌 노동 일터로 향하는 할머니들께 선비의 고상한 관념은 뒷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산책 반환점은 상합을 캐러 갯벌로 향하는 일터의 출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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