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唜島) 쌍바위를 보며 저는 단원의 그림 총석정(叢石亭)을 떠올렸습니다. 총석정은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의 누정으로 관동팔경의 하나입니다. 이곳 바닷가에 주상절리(columnar joint, 柱狀節理)에 의해 형성된 절벽과 바위가 신기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총석정은 동해 해금강에 있지만, 쌍바위는 서해의 작은 섬 말도에서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서해는 신생대 제4기 해수면 변동에 의해서 생성되었습니다. 제4기는 홍적세(1만 ~ 160만년전)와 충적세(현재 ~ 1만년전)로 구분됩니다. 이 시기는 반복적인 기후변화에 의한 ‘빙하시대’로 불리기도 합니다.
마지막 빙하기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아 서해는 중국대륙과 연결된 평탄한 육지였습니다. 이후 해빙기에 해수면이 낮아져 바닷물이 밀려들면서 서해가 형성되었습니다. 빙하기 때 말도는 중국대륙을 향하던 백두대간 산줄기의 한 자락이었습니다. 간빙기에 해수가 밀려들자 산줄기의 제법 높은 봉우리가 바닷물에 둘러싸여 말도가 되었습니다. 해안을 때리는 파도의 충격,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와 자갈의 마모 등 파도에 의한 해안침식은 차츰 쌍바위를 섬에서 떼어 놓았습니다.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다른 기반암의 차이가 오늘의 쌍바위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쌍바위는 말도 주민들의 해물창고입니다. 농어·망둥이 낚시와 물이 빠지면 맨손으로 소라, 바우재를 잡아 찬거리로 올립니다.
행정구역상 서해 5도의 하나인 우도는 말도에 속합니다. 그만큼 말도는 최전방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NLL(북방한계선)에 위치합니다. 여기서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 Northern Limit Line)은 한국과 북한 사이에 설정된 사실상의 남북 해상 경계선을 가리킵니다. 분단의 비극은 말도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 이전, 서해가 조기 울음으로 시끄럽던 시절 말도에 100여척의 선박이 몰려들었고 파시가 열려 술집들이 늘어서 흥청댔습니다. 60년대까지 이 좁은 섬에 100여 가구가 살았습니다. 그 흔적이 폐교된 초등학교입니다. 지금은 모두 떠나고 3가구가 3만평의 논농사로 어렵게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민들은 나이 들어 고향을 찾은 노인네들 뿐 입니다.
옛날 어느 풍수가가 고을 수령을 지낸 분의 묘자리를 잡아 주었습니다. 바위가 갈라지기 전, 이곳에 묘를 쓰도록 하였는데 그만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바위는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수령을 지낸 분은 그 많던 살림이 망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바위를 갈래바위 또는 쌍바위라고 불렀습니다. 쌍바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NLL선상의 작은 외딴섬 말도의 갈래바위(쌍바위)가 우리 민족의 분단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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