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종자
지은이 : 안완식
펴낸곳 : 사계절
한국토종연구회에서 정의한 토종이란 '한반도의 자연 생태계에서 대대로 살아왔거나 농업 생태게에서 농민에 의하여 대대로 사양, 또는 재배되고 선발되어 내려와 한국의 기후 풍토에 잘 적응된 동물·식물 그리고 미생물'을 말한다. 그렇다. 토종, 재래종이란 대대로 내려온 농민의 손에 의해 순계분리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종이다. 토종은 오랜기간 우리나라의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았기에 병충해와 재해에 강하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부모님은 작물을 수확하면서 가장 실한 놈을 다음해 종자로 갈무리했다. 입축성장이라는 산업화를 거치면서 각종 작물의 종자를 정부가 보급하고 있다. 다른 말로 토종, 재래종의 소멸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하여 지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종자전쟁', '로열티', '인수합병'이라는 말이 심심치않게 들리는 요즘이다. 그것은 작금의 21세기 유망산업으로 종자산업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나마 우리나라에도 그 시급성으로 농촌진흥청에 종자은행을 설치했다. IMF시기 다국적 기업의 메이저들이 한국의 종묘회사를 인수 합병하여 우리의 토종자원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 지역의 산기슭이나 밭둑에 콩의 원조인 야생콩이 폭넓게 분포되어 콩의 기원지가 우리나라로 짐작된다. 따라서 콩의 재래종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 콩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미국은 해방정국의 어수선한 틈을 노려 1901년 ~ 1976년까지 한국에서 무려(놀라지 마시라) 재래종 콩 5,496종을 도둑질해 갔다. 그 자원을 바탕으로 우량품종을 개발한 미국은 콩 수출 세계1위 국가가 되었다. 분하고 원통하지 않은가. 그 콩을 우리는 돈을 주고 수입해 사먹고 있다. 이런 꼴을 비웃는 적당한 표현의 육두문자가 있다. 하긴 종자산업 뿐이랴 정치·경제·문화는 말할것도 없고, 외모마저 비슷하게 뜯어 고치는 성형공화국이라는 오명과 아예 사고(思考)까지 따라가야 이 땅에서는 대접받지 않는가.
이 책은 저자가 15여 년동안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식물자원의 토종과 재래종을 찾은 발품기록이라 할 수 있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출판사의 정성들인 편집이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책은 식용작물, 특용작물, 원예작물 3부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62개 작물이 꼭지를 이루었다. 여기서는 강화에서 발견된 재래종을 소개한다. 석모도 상·하리 벌판에서 우리 기후에 잘맞는 야생종인 사래벼가 1989년에 발견되었다. 여기서 '사래쌀'은 묘지기나 마름의 보수를 주었던 쌀로 어원상 쌀의 품질이 안좋은 것에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사래벼는 야생성이 강해 꽃이 피면 금세 익어 쉽게 땅에 떨어져 없애기가 힘들다. 일반인은 잡초로 보이지만 유전자원으로는 보물인 것이다. 강화도는 섬이라는 지역적 조건으로 육지와는 다른 재배적 특성을 지닌 토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특산물인 화문석의 주재료인 '왕골'과 '강화인삼' 그리고 배추의 유전자를 지닌 겉모양이 무와 비슷한 '강화순무'를 꼽을 수 있다.
나는 338쪽의 피마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아주까리 도판을 보면서 어릴 적 서글픈 기억을 떠올렸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치아가 안 좋으셔서 몹시 고생이 심하셨다. 변변한 약국하나 없는 시골구석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아버지는 이쑤시개에 낀 피마자를 촛불에 달구었다. 지글지글 기름이 돋으면 거울을 들여다보며 꺼멓게 썩은 충치를 피마자로 지지셨다. 그 광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부르르 떨었다. 국민학교 5학년 늦가을로 기억된다. 사내아이 네댓 명이 보자기를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메고, 걸어 30분거리의 등교길에 나섰다. 한 아이가 '피마자가 그렇게 고소하데' 라며 군침을 삼켰다. 마침 신작로 건너편, 무서리에 잎을 다 떨군 피마자 한그루가 털북숭이 껍질이 아람 벌어진 열매만 매달고 있었다. 악동들은 2 ~ 3개의 피마자를 까 입안에 털어 넣었다. 정말 고소한 맛이 났다. 2교시 수업 중, 한 아이가 토악질을 해댔다. 그리고 무슨 전염병이 돌듯 나머지 아이들도 같은 증상을 보였다. 한 마을의 같은 학년 아이들 모두 통째로 조퇴를 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하기는 그때는 먹을 것이 정말 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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