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은이 : 정호승
펴낸곳 : 열림원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날아와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서울의 예수 」(40 ~ 42쪽)의 1연이다. 나에게 시인 정호승하면 떠오르는 시다. 초기 시편들에 등장하는 구두닦이, 신문팔이 소년, 혼혈아, 맹인, 미친년, 노숙자, 서울역 시골 소녀 등. 개발독재 시대 천민자본주의의 소외된 가난하고 약하고 불쌍한 사회적 약자들의 슬픔에 나의 젊음은 분노어린 눈물을 보였다. 그때 시인은 자본주의적 참혹함을 사창가에 비유했다. 하지만 시제목만 어디선가 귀동냥했을 뿐이지, 시편을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나의 책읽기에서 한국시는 멀었다.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과 함께 가장 넓게 대중적 사랑을 받는 시인은 달랑 이 시선집이 고작이었다. 김용택의 『섬진강 』, 도종환의 『당신은 누구십니까 』, 안도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 책장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아마! 이 시선집에 손이 간 것도 어느 답사기를 통해 만난 ‘선암사’라는 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물이 날 때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울라는 시인의 말 건넴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나는 외롭고 쓸쓸함을 못 견딜 때 배낭을 메고 선암사에 두 번 발걸음을 했다.
시선집은 초판이 2003년에 나왔다. 나는 10년이 지나서야 개정판을 손에 넣었다. 시인의 등단작인 「첨성대 」를 비롯해 모두 93편이 3부에 나뉘어 실렸고, 시인 김승희의 해설 - 참혹한 맑음과 ‘첨성대’의 시학 - 이 마무리를 맡았다. 「부치지 않는 편지 」와 「허허바다 」는 같은 제목의 두 시편이 연이어 실렸다. 이 시선집은 시인의 35년 시업詩業이 고스란히 응축되었다. ‘고통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인 것이겠지.’라고 「 시인의 말」은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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