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 별을 먹자

대빈창 2015. 9. 23. 03:27

                                                    

 

책이름 : 우리 별을 먹자

지은이 : 나나오 사카키

옮긴이 : 한성례

펴낸곳 : 문학의숲

 

교토의 내 친구 / 일곱 살 아들이 졸라 대서 / 투구벌레 한 마리 백화점에서 사 줬네 / 얼마 후 이 꼬마 녀석 / 죽은 벌레 들고 가전제품 가게에 가서 / “배터리 바꿔 주세요”

 

「미래는 알고 있다」(89쪽)의 일부분이다. 감수성이 사라진 산업문명의 풍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과 완벽하게 멀어졌다. 그만큼 암울한 미래가 다가섰다. 아이들의 가공스런 디스토피아가 눈앞에 드러났다. 지구를 몇 번이나 멸망으로 몰아넣을 양의 핵무기와 수 백 개의 핵발전소가 바닷가에 진을 친 지구의 현재 모습이다. 「하이쿠의 현대화, 현대시의 지구화」를 시집 말미에 실은 시인 이문재의 다른 글(녹색평론에 실렸을 가능성이 크다)에서 접한 시 구절이다. 시집은 60 시편과 옮긴이 한성례의 글 「‘나나오 사카기’라는 우주」와 게리 스나이더의 해설「미래로 발신하는 고대의 비전」으로 구성되었다.

유유상종. ‘그 만남은 나에게 있어 그때까지의 삶에서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책날개에 실린 일본의 자연주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야마오 산세이의 헌사다. 나는 야마오 산세이를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통해 만났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게리 스나이더를 알았고, 시집 『이 현재의 순간』을 잡았다. 나나오 사카키. 야마오 산세이. 게리 스나이더는 일본 카운터컬처의 최고봉이자 히피 운동의 핵이 되는 공동체 ‘부족’을 조직했다. 

나나오 사카키(1923 ~ 2008년)은 집과 가정이 없고, 돈을 벌지 않으며 시와 여행으로 평생을 살아갔다. 쓰러져 죽을 때가지 지구를 걸으며 자연과 인간을 노래한 길 위의 전설적 시인은 일본 열도를 종단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했다. 그의 발걸음은 알래스카 빙하, 멕시코 사막, 호주 태즈메이니아 원시림, 다뉴브 골짜기, 몽골 초원, 홋카이도 화산, 오키나와 산호초, 로키산맥 3천미터 동굴에까지 이르렀다. 출판사 『문학의숲』이 고마웠다. 《세계숨은시인선》 시리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 시인들을 소개했다. 시인의 삶을 노래한 「자서전」(22 ~ 23쪽)의 1·2연이다.

 

이름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 대강 학교교육 받고 / 14세 혼자 사는 법 배워 / 총알 배고픔 콘크리트 정글로 이어지는 / 폭풍 속을 빠져나와

하루에 현미 한 홉 야채와 작은 생선 / 거기에 약간의 물과 듬뿍 바람을 먹고 / 꼬마들 아낙들과 어울려 지내며 / 농부 어부 목수 대장장이와 / 함께 구슬땀 흘리면서 / 비누 샴푸 / 화장지 신문 돌아보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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