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
지은이 : 이흔복
책이름 : 솔
시집은 한 부에 13편씩, 4부에 모두 52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경철의 「생래적 모어母語와 정한情恨의 넋이 빚어내는 시원始原의 시편」이다.(‘시원’의 한자가 ‘情恨’이다. 명백한 오타다. 내 손에 들린 시집은 1판1쇄다. 분명 편집 과정에서 한자를 복사·붙여넣기 하고 교정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시편을 읊다가 오래 눈길이 머문「한 나무 아래 아래」(52쪽)의 전문이다.
상괭이 한 마리 죽은 새끼 상괭이를 등에 얹고 헤험친다. ∥ 상괭이 혈흔은 이미 검게 변해 있었다. ∥ 파도에 의해 새끼 상괭이는 등에서 수차례 떨어지고 그때마다 상괭이 한 마리 다시 새끼 상괭이를 업어 올리고 간다.
상괭이는 쇠돌고래과에 속하는 고래로 남·서해안에 주로 서식하는 ‘멸종위기 보호종’이다. 내가 사는 섬에서 ‘시억지’라고 부른다. 물이 빠진 해안가를 걷다보면 시억지 사체를 흔하게 본다. 분명 숭어를 쫓아 그물 안까지 따라 들어왔을 것이다. 뒷장술 해안은 섬 주민들이 뻘그물을 설치하는 맨손어업 구역이다. 많을 때는 사체 10여 마리 이상이 눈에 뜨였다. 시억지의 모성애가 눈물겹다.
- 그는 여객선 안에서도, 백도 유람선 안에서도, 해수욕장을 둘러 볼 때도, 등대 구경 하러 갈 때도 방에 남아 마시고 밥 먹을 때도 마시고 남들 마실 때도 또 마셨다. 술잔을 든 채 쓰러져 자다가 일어나 다시 잔을 쥐곤 했다. - 『한창훈의 향연』의 한 구절이다. 동료 작가들과 고향 거문도를 찾은 소설가 한창훈이 질린 술귀신은 시인 이흔복이었다. 오래전 시인 함민복과의 술자리에서 문단의 4대 주신(酒神)으로 추앙(?)받는 인물임을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시인은 1986년에 등단했다. 세 번째 시집을 냈으니, 10년에 한번 꼴로 시집을 상재했다. 지독한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 흔한 산문집 한 권 없다.
두 시편에 등장하는 ‘나타니엘’은 시인의 가톨릭 세례명이다. 시편들은 산과 들과 섬을 떠돌며 삼라만상에서 존재의 무상을 읊은 지독한 허무로 가득했다. 평자는 말했다. ‘적선謫仙’이 절로 떠오른다고. 여기서 적선은 하늘나라에서 죄 짓고 인간 세상으로 귀양살이 온 신선으로 동양 최고의 시인 이백을 가리킨다. 시집을 여는 첫 시 「내가 ‘나’이며, 다만 내가 ‘나’이며, 내가 ‘나’인 한」(12쪽)의 전문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낯설다. 나는 내가 낸 둥 만 둥 하다. 나는 나 자신의 슬픔이며 나 자신의 운명이리니 나는 영원히 고독할 것이다. 나는 나를 꿈꾸면 좋을다. 집 떠나와 집에 이르러 보니 나는 원래 집을 나선 적이 없었다. 다만 봄이 멀지 않다, 나는 눈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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