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검은 머리 외국인

대빈창 2016. 4. 18. 05:52

 

 

책이름 : 검은 머리 외국인

지은이 : 이시백

펴낸곳 : 도서출판 레디앙

 

작가는 독자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제발 설레발치지 말라고. 소설은 대한민국과 무관하다고. 까멜리아 방언을 한국 사투리로 옮겼을 뿐이라고.” 소설의 배경은 카리브해 미국령으로 까멜리아(camellia) 공화국이다. 까멜리아는 동백나무다. 검은 머리와 눈에 띄게 튀어나온 광대뼈와 가늘고 위로 치켜진 눈매의 사람들은 동백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짓을 오랜 전통으로 간직했다. 한국에서 아열대 수종인 동백나무는 중부 이북에서 생장할 수 없다. 선조들은 할 수없이 생강나무의 까만 열매로 기름을 짰다. 머릿기름은 향과 질이 좋았다. 사람들은 생강나무를 산동백이라 불렀다.

양키의 담배와 초콜릿을 원조로 받으며 세이만 초대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일삼다 미국으로 도망쳤다. 육군 준장 다사오는 대통령 관저로 전차를 몰고 2대 대통령에 스스로 앉았다. 그가 즐겨 마시던 술은 21년산 로얄 살루트다. 안가에서 여대생을 옆에 두고 위스키를 마시다 심복의 총을 맞고 즉사해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이어 대머리 군인이 다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동기와 번갈아 대통령 자리를 해먹다 쫓겨났다. 까멜리아 공화국도 민주동백당과 자유정의당 양당제도가 구축되었다. 이어 사람들이 IMF라고 부르는 외환위기가 터졌다. 주인공 루반은 까멜리아은행 노조 쟁의부장으로 매각 반대 투쟁을 이끌다 해고당했다. 사채업자로 어렵게 살아가던 그가 까멜리아은행 인수를 둘러싼 거대한 흑막을 벗겨 나가는 과정이 줄거리였다.

소설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 매각 먹튀 사건의 상식을 요구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1998년 외환위기 때 한국에 진출해 부실채권과 부동산 장난질로 수천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이것은 새발의 피였다. 2003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이라는 똥값에 인수했다. 2010년 하나금융지주는 무려 3조9157억원에 찾아왔다. 론스타가 배당으로 챙겨 간 돈이 2조원이 넘었고, 차익만 4조6635억원에 달했다. 2012년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지연 손실을 봤다며 5조원을 배상하라고 한국을 투자자 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작년 5월 15일 워싱턴에서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었다. 최근 〈뉴스타파〉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의 자금 투자자 중 모피아의 친인척이 개입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3억9000만원을 투자해 109억을 벌었다.

소설 이해의 키워드는 두 가지다. ‘모피아’는 재무성(Minsty of Finance)과 마피아(Mafia)를 합쳐 만든 말이다. 재경부 고위 관료들이 출신 학교와 인맥을 중심으로 뭉쳐 인사와 보직을 독점하며 조직적으로 이권을 채워 온 데서 생긴 별칭이다. 표제 ‘검은 머리 외국인’은 외국인 투자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는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자금을 바탕으로 하는 투자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가는 유난히 숫자에 어두워 금융의 오만가지 복잡다단한 용어와 수법들을 공부하느라 머리털이 하얗게 셀 지경이었다. 나는 이 땅의 엘리트 야바위꾼들을 산업화 주역 적자로 숭배하는 반공이데올로기와 레드 콤플렉스에 찌든 가련한 민초들의 관제 데모를 보며 머리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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