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喪家에 모인 구두들

대빈창 2016. 8. 19. 07:00

 

 

책이름 : 喪家에 모인 구두들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실천문학사

 

喪家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2004)

나는, 웃는다(창비, 2006)

저녁의 슬하(창비, 2011)

북천 - 까마귀(문학사상, 2013)

 

시인은 5년째 묵묵부답이다. 기다리다보면 새 시집이 나오겠지. 『북천 - 까마귀』는 소월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선집이다. “독자적인 발성법으로 그는 해체시와 민중시 사이에 새로운 길을 하나 내고 있다.” 그렇다. 학수고대하던 시집을 손에 넣었다. 시인 나희덕의 표사 마지막 구절이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시를 읽었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 젠장, 구두가 구두를 / 짓밟는 게 삶이다 /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 저건 네 구두고 / 저건 네 슬리퍼야 / 돼지고기 삶는 마당 가에 /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 봉투 받아라 봉투, /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표제시 「喪家에 모인 구두들」(12쪽)의 전문이다. 상가에 문상 간 시인이 본 죽음과 삶에 대한 풍경이었다. 안달이 났다. 불혹을 훌쩍 넘겨 낸 시인의 데뷔시집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2004년에 나온 초간본을 구하려 얼마나 안달복달이었던가. 품절된 책이라는 것을 알면서 혹시나 읍내서점에 부탁했다. 번번이 구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책방 주인에게 미안했다.  온라인 중고서적도 시집은 없었다. 나는 점차 지쳐갔다. 언제 도회지에 나가면 헌책방 골목을 소요할 수밖에. 나는 아쉬운 마음에  『저녁의 슬하』를 손에 잡았다. 거짓말처럼 불현듯 10여년 만에 새로운 판쇄를 찍어냈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시집은 부 구분없이 63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유성호의 「'죽음'의 흔적으로 바라본 생의 형식들」이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꼈던 사탕을 빨듯이 서서히 시집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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